23일 개막한 중국 상하이모터쇼는 글로벌 기업들의 신기술 각축장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등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유럽 기업들이 미국과 유럽 등 자동차 본고장의 모터쇼가 아닌 이곳에서 앞다퉈 최신 기술을 시연했다. 벤츠는 자율주행차의 시승 행사를 열었고, BMW는 고성능 시험 차량이 55도의 경사로를 오르는 모습을 최초로 공개했다.
세계 26국에서 온 1000여 기업은 올해 상하이모터쇼에서 신차 100여 대를 쏟아내며 최신 기술을 뽐냈다. 달라진 중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과거 저가 내연차 위주였던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등 미래차 분야에서 가장 앞선 곳 중 하나가 됐다. 작년 기준 순수 전기차(B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를 합한 신에너지차 비율이 40%를 넘었다. 자율주행과 SDV(소프트웨어 중심의 차) 분야에서도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함께 오르고 있다.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선 중국 기업들과의 기술력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번 모터쇼에 뛰어든 것이다.
◇중국에 기술 뽐내는 獨
독일 업체들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신기술을 최초 공개하는 행사를 잇따라 열었다. 벤츠는 23일 언론 등을 대상으로 부분 자율주행 시스템 ‘MB.DRIVE’가 적용된 차량을 시승하는 행사를 열었다. 운전자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차량이 출발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알아서 운전하는 시스템이다.
폴크스바겐도 중국의 복잡한 교통 환경을 고려해 자체 개발한 AI(인공지능) 기반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선보였다. 벤츠와 마찬가지로 운전자가 핸들에 손을 대야 하는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이지만, 기존 레벨2 대비 고도화된 시스템이다. 운전대를 잡을 필요 없는 ‘레벨3′는 안전상 규제가 따르기 때문에, 그보다 낮은 단계에서 최대한 기술을 발전시켜 양산차에 적용하려는 시도다.
BMW는 상하이모터쇼 개막 직전인 21일 고성능 시험 차량인 ‘BMW 비전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를 최초 공개하고, 이 차량이 55도 각도의 경사로를 오르는 모습을 시연했다. 초고속 컴퓨터가 주행 시스템과 브레이크 등 차의 모든 구동 시스템을 제어해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다. 이 제어 컴퓨터는 올해 말 양산을 시작하는 BMW의 차세대 전기차 ‘노이어 클라세’에 기본 적용된다.
일본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전기차 분야에서 신차를 공개했다. 닛산은 첫 PHEV 픽업트럭 ‘프런티어 프로’를 공개했다. 도요타는 전기차 ‘bZ7’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고, 혼다도 중국을 위해 출범한 전기차 브랜드 ‘예’의 신차를 공개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생태계 갖춘 中
중국에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기술 경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 2월 중국 1위 업체 BYD(비야디)는 저가 모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차종에 첨단 자율주행 시스템을 기본 탑재하기로 했다. 중국 대표 IT 기업인 화웨이도 중국 완성차 기업들과 합작해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차량을 내놓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테스트 베드’가 되는 게 이런 배경이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중국에 전기차 R&D(연구·개발) 센터를 지었고, 다른 업체들도 속속 중국에서 연구 인력을 늘리고 있다. 중국이 보유한 완성차, 배터리, 부품 등 전기차 생태계가 모두 세계 최대 수준이란 점에서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눈이 높아진 중국 소비자들을 공략하려면 결국 미래차 기술을 갈고닦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술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