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회사원 이창선씨는 지난해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예금·보험으로 굴리던 퇴직연금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펀드로 바꿨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시작하기에 나도 따라서 했는데 목표 수익률이나 언제쯤 주식을 판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대략 두 배는 벌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는 있지만 장기적인 목표에 따라 계획적인 재테크를 하는 비율은 선진국보다 낮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29일 공개한 ‘2020년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대부분(97.0%)은 저축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재무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성인은 43.5%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저축’이란 예금, 주식 투자, 부동산 구입 등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97%가 ‘저축 중', 10명 중 6명은 ‘목표 없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저축 자체는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저축하는 비율이 같은 조사를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1개 회원국 중 폴란드에 이어 2위였다. 전체 평균(66.1%)보다도 한국인의 저축률이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왜 돈을 모으고, 무엇을 위해 저축하는지에 대해선 모른다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10명 중 6명이 ‘장기 목표가 없다'고 했다. 조사 대상 11국 중 7위로 중하위권이었다. 전체 평균(45.3%)보다 낮았다.
저축을 하는 사람 중 장기 목표를 세워뒀다는 비율은 차이가 더 컸다. 한국은 44.8%, 나머지 나라는 68.5%였다. 한은 경제교육팀 오권영 차장은 “한국인은 많이 저축을 하지만 특별한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고 맹목적으로 돈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내일보다는 오늘’… 60%가 금융 태도 ‘낙제’
대학생 이모(24)씨는 카드사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한 달에 150만원을 번다. 최근 씀씀이가 커지면서 카드 빚이 700만원으로 늘어나 어쩔 수 없이 금리가 연 20%가 넘는 대부업 대출을 받았다. 그는 어느 날 휴대폰을 사려다가 “할부 약정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신용등급이 너무 낮아서 계획이 불가능하다고 점원은 설명했다.
한국인 중엔 이씨처럼 미래보다는 ‘오늘’을 위해 돈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미래를 대비해 돈을 모은다’는 인식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평가하는 ‘금융 태도’ 항목에서 10명 중 6명이 낙제점을 받았다. 이 항목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거나,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호한다고 답할수록 점수가 올라간다. 이 점수는 지난해 평균 60.1점으로, 2년 전(61.3점)보다 하락했다. 응답자의 60.1%가 낙제점(60점) 이하였다.
전반적인 금융 이해도는 2년 전 조사 때보다 다소 올라갔다. 이자의 개념, 단리·복리의 뜻, 분산 투자 등에 관해 물었는데 평균 점수가 66.8점이 나왔다. 2년 전보다 점수가 4.6점 상승했고, OECD 평균(62점)보다도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노년층의 금융 이해력 점수가 평균보다 낮았다(62.4점). 성별로 보면 여성의 이해도(67.0점)가 남성(66.6점)보다 다소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