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섬유 기업인 효성티앤씨는 요즘 경북 구미뿐 아니라 중국·베트남·터키·브라질에 있는 공장을 24시간 가동 중이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신축 섬유 스판덱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만드는 대로 팔려나가 물건을 대기 어려울 정도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편안한 운동복이나 실용적인 일상복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의류 업체들이 신축성이 좋은 스판덱스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스판덱스 가격은 작년 연말 ㎏당 6달러 선에서 최근엔 10달러까지 치솟았다. 효성 관계자는 “스판덱스 시장은 꾸준히 커지던 시장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회복의 흐름을 타고 섬유·철강·화학 등 전통 제조업체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인프라 투자와 소비 진작에 나서면서 중간재를 만드는 ‘굴뚝 산업’에 훈풍이 부는 것이다.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작년 1분기 7000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포스코는 이번 1분기에는 1조5000억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10년 중 분기 기준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이다. 현대제철도 올해 영업이익이 작년 대비 6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선박 제조용 후판, 자동차·가전제품용 열연강판 모두 수요가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최근 세계철강협회도 올해 전 세계 철강 수요가 17억9300만t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이는 코로나 발생 직전인 2019년(17억6700만t)을 웃돌며 최근 20년 중 최고치가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약 2조 달러(약 2200조원)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철강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석유화학 제품도 자동차·가전 수요가 회복되면서 판매가 늘었다. 지난달 국내 15대 수출 품목 가운데 화학제품 수출 증가율은 48.5%를 기록하며 선박(63.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화학회사 실적과 직결되는 ‘에틸렌 스프레드(제품 가격과 원료 가격의 차이)’는 작년 4월 t당 205달러(약 23만원)에서 최근엔 540달러(약 60만원) 선이 돼 2.6배로 올랐다.
국내 섬유·철강·화학 업종의 실적 호조세는 2분기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중국·중동에 있는 경쟁 업체들이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화학 업체 ‘사다라 케미컬’은 지난달 설비 고장으로 연산 150만t 규모의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또 일부 중국 화학회사들은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멈춰 세웠던 공장 가동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철강 회사들도 정부의 환경 규제 때문에 실제 공장 가동률은 60~70% 선에 그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이준 소재산업실장은 “코로나 백신 보급으로 미국·중국의 경제가 예상보다 일찍 반등하면서 철강·화학 회사들이 미처 증설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코로나에도 공장을 계속 가동했던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