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양주 석천레미콘 공장에서 파업으로 운행을 멈춘 레미콘 트럭들을 회사 직원이 둘러보고 있다. 레미콘 트럭에는 이번 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 회사 레미콘 트럭 기사들은 레미콘 운송비 인상에 이어 최근 경조비·휴가비 지급 등을 요구하며 3개월째 파업을 벌이고 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사업주는 이달 말 공장을 접기로 했다. /장련성 기자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양주의 석천레미콘 공장. 5000평 규모 공장에 15대의 레미콘 트럭이 두 줄을 지어 멈춰 서 있었다. 원래라면 흙먼지를 날리며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할 시간이었다. 트럭 엔진 소리 대신 공장 입구 확성기 차량에서 나오는 민중가요 소리만 요란했다. 공장 입구 약 20m 길 양쪽에는 민노총 건설노조가 붙여 놓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공장은 3개월째 멈춰 서 있다. 레미콘 트럭 기사 23명이 경조비·휴가비 지급과 정년 폐지 등을 요구하며 운행을 중단했다. 이 가운데 5명은 석천레미콘 직원이 아니고, 회사와 운송 계약을 맺은 외부 기사들이다. 이들이 회사 소속 레미콘 트럭 기사와 손잡고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3년째 이 공장을 운영해 온 박삼순(79) 석천레미콘 회장은 이를 견디지 못해 결국 이달 말 문을 닫기로 했다. 박 회장은 “몇 달 전 운반비 인상을 요구해서 올려줬는데, 이번엔 경조비까지 달라고 한다”며 “3기 신도시 건설 계획까지 발표돼 건설 경기는 호황에 접어들었는데, 레미콘 업계는 지금 문을 닫는 상황”이라고 했다.

◇레미콘 트럭 기사 파업에 폐업 잇따라

레미콘 회사들이 레미콘 트럭 기사들과의 갈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강원도 원주의 한 레미콘 업체는 지난 한 달간 공장 가동을 못했다. 한노총과 민노총 소속 기사들이 운반비 인상 폭과 관련해 대립하면서 상대방 트럭의 운행을 막고, 자해 소동까지 벌이며 정면충돌했기 때문이다. 작년엔 부산·경남 지역 레미콘 트럭 기사들이 운반비 20% 인상을 요구하며 15일 동안 파업했다. 당시 이 파업으로 건설 현장에 제대로 레미콘을 공급하지 못한 한 레미콘 회사는 결국 지난 2월 폐업하고 말았다. 광주·전남 지역 기사들도 지난해 6월 운송 거부 집단행동에 나섰다.

영세한 레미콘 업체들은 트럭 기사들의 파업과 운송 거부를 견디기 어렵다. 국내 레미콘 업체는 지난해 10월 기준 925개, 이 중 75%가 연매출 12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에 채 못 미친다.

레미콘은 시멘트와 골재, 물 등을 섞어 만든다. 레미콘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계속해서 섞어주면서 운송해야 하는데 이때 ‘레미콘 트럭’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운송에 걸리는 시간이 90분을 넘어서면 레미콘이 굳어버려서 사용할 수 없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운송수단은 없다.

◇2009년부터 꽁꽁 묶인 레미콘 트럭

레미콘 트럭 기사에게 업계가 휘둘리는 것은 레미콘 트럭의 수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시행된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르면 레미콘 트럭을 새로 등록하려면 국토교통부 산하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영세 레미콘 트럭 기사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2009년 이후 2년마다 열린 수급조절위원회 심의는 2019년까지 6차례 결정에서 매번 레미콘 트럭 신규 등록을 허락하지 않았다.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트럭 기사 등록을 결정하는 수급조절위원회에 노조와 정부 관계자만 포함돼 있고, 레미콘 업체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며 “그러다 보니 노조 측 입장만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12년간 신규 레미콘 트럭 등록이 동결되면서 건설 현장에선 운송수단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레미콘 업체와 계약된 레미콘 트럭은 2만1419대다. 지금 같은 건설 성수기에 비해서는 무려 30%가량 부족하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레미콘 공장 인허가를 내주면서 레미콘 트럭 부족 문제는 국토교통부와 알아서 잘 협의해 보라고 한다”며 “중소기업이 정부 부처를 상대로 무슨 협상력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레미콘 트럭의 운송비도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009년 3만313원이었던 회당 운반비는 올해 4월 기준 5만1121원으로 68.6% 올랐다. 같은 기간 동안 레미콘 가격은 10.5% 오른 데 그친 것과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새 트럭의 등록이 제한되면서 차량 번호판 거래에는 4000만원에 이르는 프리미엄까지 붙었다. 수도권의 레미콘 기업 대표는 “원자재 가격은 계속 오르고 건설업체 납품 단가는 묶여 있는 상황에서 운송비 갈등이 계속되면 결국 폐업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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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지난 5월 10일 자 A12면 ’12년째 증차 불허, 레미콘 기사에 휘둘리는 건설업계' 제목 기사에서 석천레미콘 공장이 3개월째 멈춰 서 있다고 보도했으나, 확인 결과 이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며 3개월간 레미콘 운행을 전면 중단한 적은 없기에 바로잡습니다. 또 노조 측은 “지입차주 5명이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것이고, 노조 측은 경조비·휴가비 지급과 정년 폐지 등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혀 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