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대출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9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신용 대출 금리는 사상 최저였던 작년 7월 말 연 1.99%(최저 금리 기준)에서 지난 7일 2.57%로 0.6%포인트가량 올랐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같은 기간 2.25%에서 2.55%로 0.3%포인트 뛰었다.
국내 금융회사 대출 가운데 70%가 변동 금리를 적용받기 때문에 금리 상승은 이자 부담 증가로 직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 금리가 1%포인트 높아질 경우 대출을 가진 전체 가계가 내야 할 이자는 12조원 늘어난다. 코로나로 소득이 줄어든 상태인데 이자 부담이 커지면 가계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63.7%인 1325만 가구가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고 있다. 이들이 이자 부담 때문에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게 되면 경기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출 금리가 뛰는 이유는 미국·중국 등 주요 국의 경제가 코로나 터널을 벗어나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국채 금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금융 당국이 부동산 급등의 원인으로 가계 대출을 지목하면서 대출 조이기에 들어간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은행들은 그동안 적용하던 우대 금리의 폭과 대상자를 줄이는 방법으로 대출 축소에 나선 상태다. 금리 인하 혜택을 줄이면 금리가 상승하는 효과를 낸다. 작년 10월 이후 금융 당국이 본격적으로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우대 금리 폭을 0.5%포인트 이상 깎았다.
9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해 작년 우리나라 소비는 이미 7.4%포인트 하락했고, 이에 따라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하락 폭도 3.7%포인트에 달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중이 80% 이상이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한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GDP(국내 총생산)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우리나라는 101%로 선진국(78%)보다 높았다.
단기 부채 비중이 높은 것도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가계 부채 가운데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 부채 비중이 23%(2019년 기준)로 프랑스(2.3%), 독일(3.2%) 등 주요국에 비해 높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이 더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경제의 견인차인 미국의 경기 회복에 속도가 붙으면서 올 초만 해도 연 0.9%대였던 미국 국채 금리(10년물)는 1.6%까지 높아졌다. 미국 경제는 올해 6% 성장이 예상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서 연방준비제도(연준)이 기준 금리 인상 시기를 예상보다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역임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4일(현지 시각)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출 금리 구성 요소인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지난 2월 말 0.99%에서 1.14%로 올랐다.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늘면서 유가·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동기 대비 2.3% 올라 2017년 8월(2.5%)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