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직원이 포항제철소 4고로에서 녹인 쇳물을 빼내는 출선작업을 하고 있다./포스코

지난 1일 찾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굴뚝에선 흰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등이 섞여 나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제철이 총 배출한 탄소배출량은 3069만2000t. 현대제철이 정부로부터 받은 탄소배출 한도를 훌쩍 넘겼다. 현대제철은 초과분에 대한 권리를 거래소에서 구매했다. 이런 식으로 현대제철이 2018~2020년 지출한 금액은 1571억원. 지난해 영업이익 730억원의 2배가 넘는다.

현대제철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기 2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비용만 35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제철소를 운영해 번 돈을 전부 탄소배출권 구매와 환경 시설 설치에 써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탄소 중립’의 큰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전환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지리·환경적 요인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 비용, 탈(脫)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등 탄소중립을 위한 여건은 경쟁국과 비교해 턱없이 불리하다.

◇삼성도 못 만든 ‘탄소중립’ 로드맵

지난해 7월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협력사에도 같은 기준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동참 의사를 밝힌 협력사는 17국 71개 기업. 대만 TSMC와 폭스콘, 3M을 비롯해 국내에선 SK하이닉스·서울반도체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애플에 반도체·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의 이름은 없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총 전력 사용량은 2만2916GWh. 이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은 17.6%(4030GWh)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현대차·SK·LG전자·포스코·네이버 등이 2030~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들의 준비 상황은 이런 선언과 차이가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다른 기업들도 구체적인 탄소중립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일단 선언부터 하고, 실현 방법은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는 1520억원, 삼성전자는 318억원의 탄소 부채(작년말 누적 기준)가 쌓여 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인천석유화학 공장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2012년 정제 설비의 연료를 중유에서 천연가스(LNG)와 부생수소로 바꿨다가 최근엔 다시 전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전기로 바꾼다고 공정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설비 전환에만 수천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요금을 더 내면 발전 방식과 상관없이 재생에너지로 인정해 주는 ‘녹색 프리미엄’ 제도 같은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태양광·풍력 발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재생에너지 100% 기업’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탄소중립 비용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비용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국내에서 처음 거래된 2015년 1월 당시 1t당 8000원대였으나, 현재는 1만5000원 안팎으로 배로 뛰었다. 향후 탄소배출권 수요가 늘면, 이 가격도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상위 30개 상장사의 온실가스 배출 부채는 709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제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IT 기업에도 탄소배출권은 부담이다. 세종시에 두 번째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네이버는 탄소배출 증가로 2030년까지 1조3000억원에 달하는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 부담이 생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