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마늘의 50.4%는 ‘대서종’이라는 품종이다. 스페인에서 수입된 품종으로 토종 마늘에 비해 매운맛이 덜하고 단맛이 강하다. ‘육쪽 마늘’로 불리는 토종 마늘의 비율은 14.2%에 그쳤다. 단군 신화에도 등장하는 ‘마늘’은 1인당 연간 소비량 기준으로 한국인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맵싸하고 칼칼한 한식의 매운맛은 한류 콘텐츠로 대접받을 정도지만, 매운맛이 부담스러워 덜 매운 서양 마늘을 들여와 먹고 있다는 것이다. 2030세대의 입맛이 이전 세대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대서종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80년대였다. 재배가 쉽고 생산성이 높아서였지만, 마늘 특유의 매운맛이 약해 ‘장아찌용 마늘’로 불리며 홀대를 받았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대서종 재배 비율은 2011년 30%를 웃돌았고 지난해에는 50%를 넘어서면서 ‘대세 품종’이 됐다. 올해는 6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부터 대서종을 재배하고 있는 충남 서산의 김모(61)씨는 “요샌 서산에서도 대서종 비율이 늘어나 ‘서산육쪽마늘’이라고 못 하고 ‘서산마늘’이라고만 한다”고 말했다.양파·고추 등에서도 매운맛 선호가 덜해졌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양파의 경우 상대적으로 출하 시기가 빠른 조생(早生)종이 수분 함량이 높아 덜 맵고, 만생(晩生)종은 더 매운 편이다.지난해 조생종 재배 면적은 5년 전인 2015년 대비 33.3%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만생종은 6.7% 줄었다. 고추의 경우 ‘아삭이고추’ ‘오이고추’ 등으로 불리는 ‘길상’ 품종(27%) 재배가 지난해 처음으로 일반 품종(24%)을 앞질렀다.
스페인에서 들어온 대서종 마늘의 인기는 젊은 소비층의 식문화와 소비 성향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한식 대신 파스타 등 서양 요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때는 스페인종 마늘을 쓰는 것이 더 어울릴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마늘을 통째로 사는 비율은 줄어드는 반면, 깐마늘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마늘을 까놓으면 스페인종이 더 하얗고 뽀얀 느낌이 들어 젊은층이 선호한다”고 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젊은층으로 갈수록 매운맛을 기피하면서 대서종 재배가 빠르게 늘었다”고 했다
매운맛 품종과 달리 단맛을 내세운 품종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품종이 최근 해외에서 들어온 ‘초당(超糖) 옥수수’다. 일반 옥수수 대비 당도가 2~3배 높고 씹는 맛이 아삭아삭한 것이 특징이다. 수분 함량이 70%에 달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초당옥수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32.1% 증가했고, 개수로만 50만개 이상 팔렸다. 아예 단맛이 없는 식품에 단맛을 넣은 품종도 인기다. 지난해 처음 국내에 소개된 ‘스테비아 토마토'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재배 과정에서 천연감미료 스테비아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재배해 마치 토마토에 설탕을 뿌린 것처럼 단맛이 난다. 캠핑 문화처럼 새로운 문화 현상에 영향을 받아 인기를 끄는 품종도 있다. ‘함양파’가 대표적이다. 스페인의 양파 품종 ‘칼솟’을 들여와 주로 경남 함양 지역에서 재배하다 보니 붙은 이름이다. 물론 국내 품종 양파보다 덜 맵고 더 달다. 이 양파는 뿌리부터 줄기까지 통째로 직화에 구워 먹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한국인의 입맛이 바뀌면서 이에 따라 선호하는 품종도 천천히 바뀌는 것”이라며 “최근 매운맛이 덜하고 단맛이 강한 국산 마늘 품종 ‘홍산’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는 등 현대 한국인에게 맞는 품종을 가꾸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