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고춧가루로 담근 김치도 ‘한국 김치’라고 할 수 있을까?”
농림축산식품부가 ‘한국 김치'를 국가명 지리적표시제(PGI) 보호 대상으로 지정하기 위해 연내에 기준을 정할 예정인 가운데 김치 업계에서 인증 기준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PGI란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 생산한 농수산물 및 가공품을 증명하는 제도다. 인증 기준이 정해지면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지역에서는 이 기준에 맞는 김치만 ‘한국 김치’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다. 중국 업체 등이 ‘한국 김치’라고 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원칙적으로는 모든 재료가 한국산이어야 한국 김치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가 있다. 해외로 수출하는 김치의 70% 정도가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배추와 무에 이어 셋째로 많이 들어가는 재료인 고추는 당연히 김치의 주원료이고, 김치 맛을 결정하는 핵심인데 중국산을 쓰면 한국 김치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치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대상(종갓집), CJ제일제당(비비고) 등은 “김치에는 최소 20종의 재료가 들어가는데, 그중 일부를 외국산으로 쓴다고 한국 김치 인증을 받지 못한다면 김치 세계화에 오히려 장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국산 재료만 쓰는 농협과 일부 프리미엄 중소 업체 등은 “한국에서 난 재료로 만든 김치가 한국 김치로 인정받는 것이 상식적이고, PGI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한 김치 업체 대표는 “중국인들이 ‘한국 김치의 매운맛은 중국 고추 덕분’이라고 하면 뭐라고 할 거냐”고 반문했다.
대기업들이 중국산 고춧가루를 쓰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국산이 중국산보다 3~6배 비싸다. 식품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도 외국 업체보다 비싼 편인데, 국산 고춧가루 사용으로 가격이 더 올라가면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식품 기업 관계자는 “이탈리아 ‘나폴리 피자’의 경우 나폴리 방식을 준수해 만들기만 하면 해외에서 만들었어도 그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한다”고도 했다. 원재료 기준을 엄격하게 고집하면 오히려 국내 기업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와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출은 1억1909만달러(약 1400억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올 들어서도 상반기에만 8680만달러(약 1000억원)를 수출, 작년 기록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출이 급증하는데 국내 업체들이 만든 김치인데 중국산 고춧가루를 썼다는 이유로 ’한국 김치'라고 하지 못하면 오히려 수출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국산 재료를 쓰는 업체들은 “그럼 우리는 왜 국산 고춧가루를 고집하겠냐”며 “가격이 비싸더라도 맛과 품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추 농가들은 “국산 재료로 만든 김치만 한국 김치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농식품 전문가들이 많다. 홍성주 고추산업연합회장은 “중국산 고춧가루를 썼으면 ‘중국산 혼합 김치’라고 솔직하게 표기하면 될 일인데 한국 김치로 기만한다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박기환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명 지리적표시제를 하면서 수입 재료를 사용한 경우도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