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가구단지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하는 임모(56)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인력이 잇따라 빠져나가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지난해 1월 비자가 만료돼 본국으로 돌아갔던 미얀마 출신 직원 2명은 코로나로 다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부터 주 52시간제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자, 임금이 줄게 된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잔업을 할 수 없게 돼, 직원들 월급이 22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줄었다”면서 “최근 직원 4명은 배달 알바나 이직을 하겠다며 퇴사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이 회사에서는 내·외국인 근로자 24명이 일했는데 1년 반 만에 18명으로 직원이 줄었다.
세계 경제가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들은 연일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한국 산업의 뿌리인 중소기업은 사상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피해 근로자들은 배달 알바 등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빠져나가고 새로운 근로자 유입은 끊긴 상황이다. 코로나로 외국인 근로자도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 종사자 규모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359만6000명에서 지난해 354만6000명으로 5만명 줄었다. 반면 배달 운송 종사자는 2019년 4만여 명에서 지난해 12만여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한국경제연구원 추산). 마지막 보루였던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지난 21일까지 총 2만301명분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서가 발급됐지만 실제 입국한 사람은 162명으로 0.79%에 불과하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강력한 회복세를 타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회복은커녕 일감이 있어도 사람이 없어 공장을 못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찾은 경기도 시화공단의 한 철강 가공 업체는 근로자를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최근 텀블러 등에 들어가는 특수강 주문이 조금씩 늘어, 지난 4월 직원 3명 모집 공고를 냈지만 석 달째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이 회사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3명은 비자가 만료돼 본국으로 돌아간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임원 이모씨는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수주를 받아도 외주 업체로 물량을 돌리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오려는 사람 없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업체들은 하루하루 인력사무소에서 일용직 근로자를 구해 쓰는 형편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가구 업체 사장 최모(61)씨는 “코로나 전에는 외국인 근로자 5명을 고용했는데 지금은 2명밖에 안 남았다”며 “인력사무소에서 기술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단 데려다 쓴다”고 했다.
국내 고용 시장과 제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중소 제조업의 인력난을 현 상태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 제조 업체 수는 2018년 기준 56만8000개로 전체 제조업의 99.7%에 달하고 중소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체 제조업 취업자 중 81%다.
중소 제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막히면서, 남아 있는 이들의 ‘몸값’은 뛰고 있다. 경기도 시흥의 한 특수강 가공 업체 사장 김모씨는 올해 초 베트남 출신 직원 A씨에게서 월급을 370만원에서 44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A씨는 임금 18% 인상뿐 아니라 소득세도 회사가 부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잔업·특근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근무시간을 단축하면서 줄어든 수당을 월급 인상으로 보전받겠다는 것이다. A씨는 10년간 이 회사에서 일한 숙련공이었다. 붙잡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실적이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A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업체로 이직했다. 김씨는 “코로나로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상황을 이용한 것 같다”며 “일을 열심히 가르쳐서 숙련공 수준으로 만들어 놨는데,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공장 가동률 70%… 소외되는 중기
올 들어 글로벌 경기 회복과 함께 각국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은 여전히 7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최악의 인력난이 공장 가동률 회복의 발목을 잡으면서, 중소기업들은 코로나 경기 회복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월 중소 제조업 공장 가동률은 71.1%였다. 지난해 연평균 가동률 68.7%에 비하면 상승한 수치지만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연간 평균 가동률(73.3%)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소 제조업의 정상적인 공장 가동률은 80% 이상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중소기업에 필수 인력이 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할 수 있는 다양한 비자 프로그램을 만들고 숙련된 근로자에게는 귀화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며 “동시에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