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박치수 전무는 최근 30대 직원 2명과 서울 성수동의 사진관을 찾았다. 그런데 사진사가 없었다. 박 전무는 “알아서 사진을 찍고 돈까지 내는 셀프 사진관이라고 하더라. 처음엔 의아했지만 후배들이 시키는 대로 다소 과격한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즐기다 보니 모르는 사진사 앞에서 경직되던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져 좋았다”고 했다. 50대 후반인 전무와 30대 직원은 교보생명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역(逆)멘토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종종 시간을 같이 보낸다.

역멘토링이란 선배가 후배에게 조언을 하던 기존의 멘토링을 뒤집어, 후배가 선배에게 ‘가르침’을 주는 활동을 뜻한다. MZ세대의 소비가 빠르게 늘면서 소비재·식음료 기업 등에선 4~5년 전부터 확산했는데, 기업 문화가 보수적인 금융권에도 서서히 퍼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의 주역으로 떠오른 MZ세대의 성장세는 투자·대출 등 금융 부문에서도 가속화하고 있다.

MZ세대는 교보생명처럼 선배에게 최근 트렌드를 일깨워주는 ‘스승’ 역할을 하거나, 미래의 주력 소비자인 MZ세대를 공략할 새로운 금융 상품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박 전무는 “‘셀프로 놀기’가 의외로 재밌다는 것, 또 사람들은 포토샵 같은 사후 공정에 오히려 돈을 쓰더라는 점 등을 배웠다”고 했다.

◇금융사 임원들 “MZ세대, 제발 우리를 가르쳐줘”

신한카드는 2년 전 브랜드 관련 2030세대 멘토링 그룹인 ‘브랜드 크리에이터’를 시작했고 지난해엔 영업 그룹의 MZ세대 직원들로 구성된 ‘영끌추진단’을 출범시켰다.또 지난 4월엔 임원에게 MZ세대 20명으로 이뤄진 팀이 의견을 제시하는 역멘토링 프로그램 ‘알스퀘어’를 만들었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끼리 카드 실적을 함께 쌓는 ‘크루(Crew) 카드’, 방탄소년단(BTS)과 연계한 PLCC(특정 브랜드를 내세운 신용카드) 등이 이들이 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신상품이다. 문동권 신한카드 부사장은 “MZ세대와 유튜브 콘텐츠나 광고 모델 등과 관련한 회의를 하면 종종 의견 충돌이 일어나지만 포용하고 의견을 수용하자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며 “지나고 보면 젊은 직원들의 의견이 대부분 맞더라”고 했다.

MZ세대 멘토들은 보수적인 금융사의 문화를 바꾸는 데도 열심이다. 신한금융지주의 MZ세대 10명이 참여한 ‘후렌드(who-riend) 위원회’는 “우리에게 마음껏 조언해보라”는 경영진의 의지로 지난 3일 만들어졌다. 첫 회의 때부터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 위원회에서 활동 종인 박영주(34) 위원은 “휴가 결재는 ‘셀프’로 하고, 스타트업처럼 우리도 ‘님’으로 호칭을 바꾸자 등의 아이디어를 임원진에게 전달했는데 모두 수용됐다”고 했다.

◇“급부상하는 2030 금융 소비자 잡아라”

우리은행의 역멘토링 프로그램 ‘레드팀’, KB금융지주 계열사의 ‘그룹 주니어보드’ 등도 최근 만들어진 MZ세대 역멘토링 프로그램이다. KB국민은행 역멘토링 프로그램 ‘아이디어 뱅크 보드’에서는 최근 2030세대에서 유행하는 MBTI 테스트(성격 유형 검사)를 통해 ‘자신과 맞는 직원을 찾아보자’는 아이디어를 행장에게 내기도 했다. 국민은행 유지연(26) 대리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은행의 상품·서비스도 더 다양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융회사가 MZ세대 직원에게 조언을 급히 구하는 배경에는 이들이 금융 소비자의 주축으로 부상하는 속도를 금융사가 충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도 깔려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2020년 20·30대의 대출 증가율은 각각 119%, 41%로 40대(21%)나 50대(18%)보다 훨씬 높았다. 신규 주식 계좌 개설도 20·30대가 60%를 차지한다. 반면 최근의 취업난 등의 영향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 직원은 거꾸로 20대가 급감하고 50대 비율이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한국 금융회사 직원 중 20·30대는 64%였지만, 지난해엔 이 비율이 55%로 줄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수적인 금융회사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려면 역멘토링이 일회성 보여주기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