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신흥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미국의 테이퍼링(돈 풀기 축소)은 당초 예상됐던 내년이 아니라 연내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3일 “경제 전문가 4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3명 중 2명꼴인 28명이 ‘다음 달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테이퍼링을 공식화할 것’으로 응답했다”고 전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매달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풀어 왔는데 이를 점차 줄이는 방안을 곧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다.

테이퍼링으로 달러화 공급이 줄면 달러화 가치는 상승하고, 신흥국 통화 가치는 떨어진다. 또 시장 금리를 끌어올려 가계와 기업의 부채 부담이 늘어난다. 연준의 테이퍼링과 뒤따를 기준금리 인상은 한계기업과 자영업자 부실, 거품 우려가 있는 자산과 같은 리스크가 한꺼번에 터지는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지도부 다수가 아직은 돈을 푸는 통화 정책을 선호하고 있어 상황을 좀 더 주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신흥국을 중심으로 테이퍼링 경계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지난 2013년 트라우마(정신적 충격)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줄곧 돈을 풀던 연준이 처음으로 테이퍼링을 언급하자 신흥국 금융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신흥국에선 외국인 이탈로 주가가 급락하고, 통화 가치가 하락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엔 연준이 예고 없이 테이퍼링을 실시했지만, 이번엔 시장이 테이퍼링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어 당시보단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금 유출이 예상되는 신흥국들은 테이퍼링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금융 불안을 선제적으로 막고자 잇따라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4일 기준금리를 연 4.25%에서 5.25%로 1%포인트 올렸다. 지난 3월, 5월, 6월에 이어 올 들어서만 4번째 금리 인상이다. 브라질은 9월에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고했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올해 세 차례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연 5.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