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나 고기는 최대한 적게 사는데, 계란은 비싸다고 안 살 수도 없고.”
식당 주방보조로 일하던 이모(66·서울 강서구)씨는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고정 수입이 사라져 지출을 최대한 줄였지만, 최소한의 식품까지 안 살 수는 없었다. 이씨는 “쌀·계란·채소 등 안 오른 품목이 없는 것 같다”며 “지금으로서는 재난지원금이 들어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최모(59)씨는 “올해 들어 수익을 낸 달이 아예 없다”고 했다. 계란을 비롯해 주요 식재료의 가격이 거의 다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손해지만, 음식값을 올리면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메뉴 가격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저소득층 식료품 지출 12% 급증
‘밥상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저소득 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식료품(비주류 음료 포함) 지출액은 37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다.
식료품 부담은 소득이 낮을수록 가중됐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식료품 지출액은 24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급증했다. 2분위 가구는 식료품 구입에 28만5000원을 써 전년보다 6.8% 늘었다. 3분위는 34만7000원으로 전년보다 0.9% 늘었고, 4분위는 44만1000원으로 오히려 3.8% 줄었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료품 지출 부담이 커진 셈이다.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지출이 늘다 보니 저소득층의 지출 증가 폭이 컸다는 분석이다. 식료품 물가 상승으로 지출이 늘어난 탓에 1분위 가구의 ‘적자가구’ 비율은 55.3%에 달했다. 이는 1년 전보다 8.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쌀 30%, 계란 22%, 시금치 76% 올라
이처럼 저소득층 식료품 지출 비율이 급등한 것은 식료품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식료품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7.3% 뛰었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5%)의 3배 수준이다. 식료품은 대표적인 필수 지출 항목 중 하나로, 물가가 올라도 절약하는 데 한계가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일 기준 쌀(20㎏) 가격은 6만952원으로 평년가(4만6760원)보다 30.3%나 올랐다. 지난해 기록적인 장마로 쌀 생산량이 급감한 탓이다. 지난해 말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계란값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가 수입 계란까지 들여왔지만, 한 판(30개)의 소매가는 평균 6826원으로 평년가(5332원)보다 여전히 22.4% 높다. 폭염으로 시금치(전년 대비 76% 상승) 등 채소류도 급등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원유 가격이 뛰며 우유제품 가격도 인상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국제 곡물가격 또한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9월 이후에도 밥상물가는 안정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했다.
◇”재정지원은 필요한 계층에 집중해야”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재난지원금 같은 정부 지원을 저소득층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 지원이 필요한 사람한테 지원을 더 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옳은 원리”라며 “선별 지원이 경제적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아세안(ASEAN)+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23일 ‘2021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를 통해 “높은 가계 부채와 불확실한 고용 전망은 민간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재난지원금 등) 재정 지원 조치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피해를 본 취약계층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AMRO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9%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