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흥미로운 분석보고서를 냈다.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주요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라는 내용이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영끌 대출’(영혼까지 담보로 잡히고 대출 받기)까지 나서고 있고,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생계자금 대출을 늘리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한국경제에서 빚 문제는 가계 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4년간 정부채무도 급증하고 있다. 정부 빚이 급증하는 가운데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가계 빚 급증은 한국경제에 어떤 위험을 안고 있을까? 가계부채 위기가 조만간 폭발할 가능성은 없을까? 위기가 폭발하기 전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고서를 낸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수년간의 가계부채 급증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는 향후 1년이 가계부채 관리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가계부채 위기가 폭발하면 결국 정부 재정이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하는데, 문 대통령 취임 기간 동안 정부도 빚이 급격히 늘어나 가계부채 안전판이 망가진 상태”라고 걱정했다.
조 실장은 미국 텍사스 주립대(오스틴 캠퍼스)에서 재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회 예산정책처 세입세제팀장(2004~2006년)을 거쳐 2006년부터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재정과 세금, 거시경제 동향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9월 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 47층 한국경제연구원 내 ‘크리에이티브 존’ 휴게실에서 조 실장과 마주 앉았다. 북쪽 유리창 너머로 한강의 밤섬과 마포대교가 보였다. 초가을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고 구름이 한 두점 여유롭게 떠돌고 있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 1위
인터뷰를 시작하며 곧바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한국 가계부채의 상황이 어떤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상당히 악화되고 있다. 너무 빨리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얼마나 빨리 증가하고 있나?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추세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국제 비교를 해봐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자료가 유용하다. BIS 발표를 보면 2020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전년보다 9.4% 증가한 1998조3000억원이다. 작년 증가율이 BIS 조사대상 43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규모는?
“2020년말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GDP의 103.8%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6년말에는 87.3%였다. 4년간 16.5%포인트 늘어났다.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 등 G5(주요 5개국)는 2016년말 66.1%에서 2020년말에 72.5%로 6.4%포인트 올라갔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G5 평균보다 2.6배나 빨리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더 빨라
—빚이 늘더라도 소득이 더 많이 증가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가계부채의 질적인 측면, 즉 소득 대비 부채의 상황을 따지면 어떤가?
“한국의 DTI(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 비중이 2015년에 162.3%였다. 부채 총액이 1년간 벌어들인 처분가능소득의 162.3%라는 뜻이다. 이 비율이 2019년말에는 190.6%로 28.3%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G5는 112.9%에서 114.3%로 1.4% 포인트 밖에 안올랐다. G5는 부채가 늘면서 소득도 같이 늘어난 반면, 한국은 소득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훨씬 컸다는 의미이다.”
—다른 기준이 있다면?
“DSR(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 기준으로 봐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1년간 벌어들인 처분가능소득 가운데 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쓴 금액의 비중을 따져본 지표이다.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2015년 10.7%에서 2019년 12.3%로 1.6%포인트 올라갔다. 반면 G5는 7.5%에서 7.3%로 0.2%포인트 내려갔다. G5와 한국 모두 금리가 내려가면서 원리금 상환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G5의 경우 한국과 달리 처분가능소득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가계부채의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을 모두 종합해 상황을 판단하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양적으로 많아지고 증가 속도도 빨라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본다.”
정부 대책의 약점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나?
“정부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차입자를 대상으로 규제를 하고 있다. 주요 부동산 투기 지역에 부채가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 넘지 못하도록 DTI 비율을 강화했다. 또 지난 7월부터는 개인별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DSR도 시행해 나가고 있다. 소득이 없으면 대출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실질적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개인별 총량 억제보다는 취약 계층의 채무상환 리스크(위험)를 분산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에서 특정 지역에 전면적으로 대출 규제를 하게 되면 다들 대출받기 어려워지므로 현금 부자만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여파로 저신용자나 취약 계층은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되어 보험-저축은행 등 금리가 높은 비은행의 2금융권으로 밀려난다. 정부에서 보호하려는 서민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현상이 나타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면 규제나 총량 규제를 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심해지니 은행이 자율적으로 차입자들의 신용을 평가해 선별하도록 재량권을 더 줘야 한다. 실수요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은행의 재량권을 좀 더 넓혀줘야 한다는 뜻이다.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있으니 취약 계층 보호를 위해 변동금리를 장기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주택정책 실패가 가장 큰 원인
—코로나 사태로 가계부채가 더 악화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그동안 계속 최상위권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빨라졌다. 코로나 사태를 같이 겪은 선진국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
—G5도 코로나 사태를 겪은 것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특히 급증한 이유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대출이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너무 빠르게 오른 것이 원인이다. 2030 세대가 주택 가격 상승의 유탄을 맞아 벼락거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빚을 내서 주택이든 주식이든 암호화폐든 사들이고 있는 것이 G5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가 가계부채 증가의 가장 큰 이유라는 뜻인가?
“그렇다. 주택정책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는 주택대출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억제 정책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근본적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미 임기말이니 고칠 시간이 없고, 그럴 마음이나 능력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주택정책의 전면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
빚내서 빚갚는 자영업자들
—자영업자들의 대출 상황은?
“올해 3월말 현재 자영업자 빚이 832조원이 된다. 통계상으로 절반 정도는 가계부채로, 나머지 절반 정도는 기업부채로 잡힌다. 어쨌든 자영업자 부채가 작년에 전년 대비 18.8%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이전에도 자영업자 부채는 연간 10% 정도씩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타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가 자영업자들의 빚 상환을 연기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연기 조치가 끝나면 자영업자들의 빚이 상당수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청년층과 자영업자의 빚이 가계부채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빚을 내서 돈을 어디에 쓰나?
“지난 5년간 가계 부채 증가율은 GDP 증가율의 3.7배, 민간소비 증가율의 6.6배였다. 소득보다 빚을 더 많이 내고, 빚을 내서 소비보다 더 급한 곳에 썼다는 의미이다. 빚을 내서 어디에 썼겠나? 자영업자들은 빚내서 빚 막고, 2030 세대는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빚을 내 집을 산 것이다.”
가계부채 위기의 뇌관
—가계부채 위기가 폭발한다면 그 뇌관을 칠 방아쇠는 어떤 것인가?
“코로나 사태의 향후 전개 상황이 방아쇠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미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자금) 회수에 나서는 것이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인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의 가계부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한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의 진행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자금 회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물어보기로 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회수하는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코로나 사태의 극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풀었다. 그러나 이제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자 유동성(자금)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미국 국채 매입량을 줄여나가다가 금리를 올리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신흥국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어떤 타격을 받게 되나?
“먼저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또 한국은행에서 최근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는데, 그 이유도 이런 가계부채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선제적으로 먼저 금리를 올려 면역력을 키우지 않으면, 나중에 글로벌 금리인상 시기에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서 거품이 붕괴하면서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 같다.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금씩 올리면서 유동성을 회수하면 한국의 시중은행들도 금리를 올리며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할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어떤 계층이 가장 타격을 받게 되나?
“소득이 적은 젊은층과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1금융권인 은행보다는 보험사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높은 금리로 단기자금을 많이 빌린다. 금융위기의 조짐이 보이면 2금융권 회사들은 은행보다 자금을 서둘러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파산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취약계층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자평한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등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은 늘지 않았다. 2016년 4분기와 2019년 4분기를 비교해 보면 저소득층의 처분가능소득은 월평균 7만4000원 줄었다. 이와 반대로 고소득층은 오히려 16만3000원 정도 늘었다.
2020년부터는 통계청의 가계소득 분석 기준이 바뀌었는데, 2019년의 추세가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정부가 저소득층에 지원해주는 이전 소득(정부 지원금)은 예전보다 늘었으나 저소득층이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이 워낙 많이 줄다 보니 실질적인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소득이 늘지 않는데 부채가 늘어나니 저소득층의 재무건전성이 매우 나빠진 것이다.”
가계부채, 남유럽 경제위기 때보다 심각
한국 가계부채 위기의 징후를 좀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국제 비교를 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 경제위기나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가계부채와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 상황을 비교하면 어떤가?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옮겨가면서 2010년에 남유럽의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재정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재정위기를 겪기 몇 년 전부터 이 나라들의 민간부채와 정부부채가 빠르게 증가했었다. 예컨대 이 4개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부채가 2005~2009년에 5년간 29%나 증가했다.
이렇게 민간 부문의 부채가 급증해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똥이 옮겨 붙었다. 2010년에 정부가 빚이 많아 소방수 역할을 못하게 되자 재정위기로 번졌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한국의 민간부채가 33.2% 증가했다. 재정위기 직전의 남유럽 국가보다 민간부채 상황이 더 심각하다.”
—부채 위기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나?
“남유럽의 경우를 보면 부채 위기는 순간적으로 온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부나 민간 부문에서 투자금 회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돈을 뺀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이탈하는 외국자본을 붙잡기 위해서는 높은 이자를 줘야 하지만, 국가 재정이 좋지 않으니 돈을 떼일 위험이 높다고 판단해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투자자들이 외면한다.”
—한국경제의 펀더멘틀(기초체력)이 남유럽보다는 좋지 않은가?
“물론 남유럽보다 펀더멘틀이 좋기는 한다. 그러나 부채 위기는 순간적으로 발생하고 금융회사들이 취약 계층부터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취약 계층의 부실이 금융권과 실물경제로 차례로 옮겨간다. 민간부채나 정부부채의 증가 속도와 질적인 측면을 보면 우리가 남유럽 국가보다 안심할 때가 아니다. 위기 의식을 갖고 관리해야 할 시점이다.”
향후 1년이 고비
—한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시간 여유는 얼마나 되나?
“미국이 금리인상을 본격화 하기 전, 즉 1년 정도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1년 동안 가계부채 관리를 잘 해야 폭발을 막을 수 있을 듯하다.”
—내년 3월에 대선을 앞둔 정권 말기여서 주택 정책도 추동력을 잃고 있다. 향후 6개월 간은 선거 때문에 정국이 어수선할텐데 가계부채 관리가 제대로 될까?
“향후 1년이 부채 위기 관리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걱정스럽다.”
가계부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지표와 함께 충분히 들었다. 이렇게 나쁜 가계부채 상황이 위기로 번지지 않고 잘 관리될 수 있을까?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점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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