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요금 인상은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글로벌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급등이라는 악재가 덮친 결과다. 이런 상황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탄소 배출이 없는 원자력발전량을 줄이면서, 석탄·석유보다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LNG 발전을 늘렸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기대에 못 미치자, 탄소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연료로 LNG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LNG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도 더 이상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LNG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원전 활용도를 높이지 않는 한 전기 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NG 발전 늘렸는데 연료비 급등
23일 정부와 한전이 발표한 ‘10~12월분 연료비 조정 단가 산정 내역’에 따르면, 지난 6~8월 유연탄·LNG·벙커C유 등 연료비는 ㎏당 355.42원으로, 직전 3개월 대비 19% 치솟았다. LNG 가격은 72%나 올랐다. 특히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한국이 수입하는 9월 LNG 선물 가격은 지난 2월과 비교해 3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값싼 원자력발전량은 줄이면서 값비싼 LNG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7월 원전 비율은 29.8%, LNG는 20%였다. 하지만 지난 7월 원전은 22.7%로 쪼그라든 반면, LNG는 28.9%로 늘었다. 정부가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고집하는 한 한전의 발전 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구조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해 결국 LNG 발전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당초 2022년 11월까지 가동할 예정이었던 월성 원전 1호기를 재작년 조기 폐쇄하지 않고, 신한울 1호기도 운영 허가를 예정대로 내줘 지난 7월부터 가동했더라면 한전의 발전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었다”며 “향후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 요금 더 오를 수 있다
전기 요금 인상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은 23일 연료비 변동분을 전부 반영했다면 4분기 전기 요금은 kWh당 13.8원 올려야 했다고 밝혔다. 지금처럼 연료비 고공 행진이 계속되면 앞으로 최소 10원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전은 전기 요금 동결 과정에서 적자가 누적돼 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된 올해에만 한전 적자가 3조2677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전기 요금 변동 폭을 지나치게 좁게 잡아놓는 바람에 가격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당장 소비자에게는 인상 폭이 작은 것이 유리하지만 한전 적자 누적이 결국 미래 세대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LNG 가격과 연동되는 국제 유가는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해외여행 등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석유 제품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표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겨울 한파가 몰아칠 경우 국제 유가가 올 연말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기 요금 인상과 관련, 중소 제조 업체와 소상공인들도 코로나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반응이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원재료 수입 물가가 전년 말 대비 45% 급등한 데 이어, 4분기 산업용 전기 요금까지 인상되면서 중소기업 경영 애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제조 원가 중 전기료 비율이 15%나 되는 뿌리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