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방역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올해 걷어야 할 세금 납부 시기를 내년으로 미루자는 여당 주장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법에 저촉된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홍 부총리는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민주당 주장처럼 세수를 내년으로 넘겨 잡는 게 가능하냐”는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요건이 안 맞는 것은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납부 유예해주면 국세징수법에 저촉되므로 그런 측면에선 어렵다”고 했다.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여당의 주장을 들어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이 국민들에게 돈을 뿌리는 관권·금권 선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재난지원금 명칭을 ‘전 국민 위드코로나 방역지원금’, ‘전 국민 일상 회복 방역지원금’ 등으로 바꾸며 지급 강행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홍 부총리, ”세금 납부 유예는 법에 저촉된다”
이번 논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년 1월에 10조~15조원을 들여 전 국민 1인당 20만~25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기재부는 지난해 올해 예산안을 짜면서 세수를 282조7000억원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백신 조기 개발 등에 힘입어 경기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회복되면서 올해 국세 수입이 정부 예상치보다 늘어났다.
여당은 하반기에도 세금이 더 걷히는 점을 고려해 올해 정부 예상치를 초과하는 세수가 4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 돈으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가재정법은 당해 연도에 초과 세수로 못 쓰고 남는 돈(세계잉여금)은 다음 해로 이월하더라도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국채 상환에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세수 유예다. 내년으로 미룬 세금으로 내년 초에 재난지원금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에 대해 “(여당)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국세징수법에 유예 요건이 있다”며 법에 저촉된다고 했다. 현행 국세징수법은 납세자가 재난이나 도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을 본 경우 등으로 세금 납부를 유예할 수 있는 조건을 정해 놓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매출이 줄어든 소상공인처럼 심각한 재난으로 피해를 본 경우에 한해 납부 유예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일환 청와대 경제수석도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납부 유예 방식은 초법적 발상이 아니냐’는 질문에 “국세징수법상에 나와 있는 요건이 있다. 그런 요건을 고려해 판단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납부 유예해줄 세금도 없어
기재부는 현실적으로 납부를 유예할 만한 세금도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걷을 세금은 대부분 걷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코로나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위해 올해 내야 할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를 내년에 내도록 유예해줬다. 남은 세금 가운데 덩치가 큰 것은 매월 걷는 유류세와 12월에 걷는 종합부동산세다. 11~12월분 유류세는 2조5000억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이 가운데 90%쯤은 도로나 도시철도 확충에 써야 하는 목적세고 이를 빼고 연말까지 유예할 수 있는 금액은 유류세에 붙는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해 2000억~3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5조1000억원쯤으로 추산되는 종부세는 전액 부동산 교부세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배분되기 때문에 납부를 미뤄도 재난지원금으로 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