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700만원어치 수송에 항공유만 1억원 들어 - 공군의 다목적 공중 급유 수송기 시그너스가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만7000L가 11일 오후 김해공항에 도착해 하역되고 있다. 이 요소수는 하루 치도 채 안 되는 물량으로 품귀사태 이전 가격으로 약 2700만원어치다. 반면 이번 임무에서 시그너스가 소모한 항공유는 약 1억원(16만L)어치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군

정부가 요소수 대란에 ‘긴급수급조정조치’라는 칼을 빼든 11일, 요소수 업계에서는 “요소수 사태가 전방위로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데,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기 2주 전에 중국 수출 제한 조치가 시행됐는데도 정 장관은 보고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요소수 업계가 지난 9월 중순에 이미 중국의 수출 통제 가능성을 당국에 알렸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뒤늦게 수습에 나선 정부가 요소수 생산·판매 업자에 매일 생산·출고량을 보고하라고 명령한 데 대해서도, 요소수 업계에서는 “정부가 중국의 수출 제한 조짐을 알려줬을 때는 손 놓고 있더니, 뒤늦게 애먼 기업만 범죄자 취급을 한다”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조치 시행 2주 후까지 보고 못 받은 외교장관

우리나라의 관세청과 같은 중국 해관총서가 요소 수출 제한 조치를 고시한 것은 지난달 11일이었다. 그로부터 나흘 후인 지난달 15일 수출 제한에 들어갔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런 내용을 파악한 것은 6일이나 지난 뒤인 지난달 21일이었다. 당시 중국 현지 공관은 외교부와 산업부에 중국산 요소 수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했다.

2021년 10월 29일(현지시간) 정의용 외교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회담을 갖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외교부 제공

정부가 당장 중국과 협의에 나서야 했지만, 29일 이탈리아 로마 주요 20국(G20) 정상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약식 회담을 가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회담 내내 요소 문제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수출 제한 시행 시점부터는 2주일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정 장관은 보고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정의용 장관은 “그 이전에 출국했기 때문에 요소수 문제에 대한 내용을 보고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답했다.

양국 외교장관이 만난 날 국내에서는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주한 중국 대사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 것을 두고 부처 간 엇박자 문제도 제기된다. 이같이 정부가 요소수 문제를 간과한 사이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이달 2일에서야 정부는 관계 부처 회의를 소집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9월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조짐을 파악한 요소수 업계가 정부와 현지 공관에 애로 사항을 전달했지만, 당국이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요소수 업계 관계자는 “두 달 전에 중국이 요소 수출을 막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아, 정부와 공관에 우려를 전달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통상 문제를 다루는 산업부는 물론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도 요소 수출 통제의 파급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비료 공급 문제로 오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자 취급한다” 요소수 업계 격앙

‘긴급수급조정조치’로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된 요소수 업계는 격앙된 분위기다. 매일매일 생산량, 출고량을 보고하라는 조치에 “우리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긴급수급조정조치’는 생산·판매업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초강력 조치다. 작년 3월 ‘마스크 대란’ 당시 부직포 수급과 관련해 사상 처음 발동한 데 이어 이번이 사상 두 번째다. 요소수 업체 관계자는 “요 며칠 새 매일같이 공무원들이 사업장에 들이닥치니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정부가 대응을 잘못해 놓고서는 우리에게 덤터기를 씌운다”고 말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요소수와 원료의 매점매석 행위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단속한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매점매석 행위를 단속 중인 모습./연합뉴스

정부는 요소·요소수 매점매석 행위 금지를 고시한 지난 8일부터 환경부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단속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판매량보다 10%를 초과해서 보관하는 경우 이를 ‘사재기’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마다 오염물질 저감장치(SCR)를 장착한 차량이 늘어나면서 요소수 수요도 많아지고 있다”며 “작년보다 10% 더 가지고 있다고 매점매석이라는 건 미리 물량을 확보한 기업들을 범죄자로 모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요소수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보고도 늦었고, 대응도 잘못됐다”며 “지금 정부 역할은 수입 업체들이 더 많이 수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외교 채널을 동원해 이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