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회사원인 김모씨는 올해 초 전셋집을 옮기면서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 전에 살던 곳과 평형이 같고, 오히려 도심에서 먼 서울 외곽 아파트였지만 전세금은 더 비쌌다. 최근 1년 새 매매가가 급등하면서 전셋값도 같이 뛴 것이다. ‘내 집 마련’이 초조해진 그는 올해 봄,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화제가 되자 마이너스 통장 대출 20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김씨는 “수시로 날아오는 ‘마통’ 금리 인상 안내 문자를 받으면 한숨이 나온다”며 “월급은 제자리걸음이고 코인 투자 수익도 예전 같지 않은데 이자만 다달이 늘어간다”고 했다.

빚을 내서 집을 얻거나 주식 투자를 하는 젊은이가 늘면서 30대의 대출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통계청이 공동으로 진행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30대 가구주의 부채는 평균 1억1190만원으로 전년(1억82만원)보다 11.0% 늘었다. 30대의 빚은 지난해 처음으로 평균 1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모든 연령대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매년 한 차례씩 집계하는 가계금융복지 조사는 전국 2만여 표본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영끌’과 ‘빚투’로 30대 대출 급증

가계 대출이 전반적으로 늘면서 한국 가구의 평균 부채는 지난해보다 6.6% 증가한 8801만원으로, 8800만원을 처음 넘어섰다. 반면 가구당 평균 소득은 6125만원으로 전년(5924만원)보다 3.4% 증가하는 데 그쳤다.

30대의 부채가 특히 급증한 것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빚투(빚내서 투자)’라 할 정도로, 청년들이 빚을 최대한 끌어 쓰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모든 연령대 중 40대의 빚이 가장 많지만(2021년 기준 평균 1억2208만원) 30대의 빚이 더 빨리 불어나면서 그 간극은 계속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엔 40대의 부채가 30대보다 평균 1200만원 많았지만, 올해 차이는 1000만원 정도로 줄었다. 청년층의 빚은 대부분 은행 등에서 끌어다 쓴 금융 부채였다. 2030 가구주의 74%가 금융사에 빚을 지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 중 금융 부채가 있다고 답한 비율(57%)보다 높다.

빚이 점점 불어나는 가운데 대출 이자는 계속 오르고 있어 상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 가계 부채 중 변동 금리 대출은 약 75%를 차지한다. 30대의 금융권 대출(평균 9404만원) 중 변동 금리 대출이 전체 평균과 비슷한 75% 정도일 경우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한 해에 내야 하는 이자가 약 70만원 증가한다.

◇부동산 거품이 가져온 자산 증가 ‘착시’

이날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가 나오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페이스북에서 “코로나19 위기에도 3대 소득·분배 지표(5분위 배율,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가 모두 개선되며 2017년부터 4년 연속 개선세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양극화가 개선되고 가구당 자산 증가율이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전문가들은 “내실이 없다”고 평가했다.

2020년 가구당 평균 소득은 1년 새 3.4% 늘었는데, 이 중 정부가 지급한 수당 등 공적 이전소득이 소득 계층별로 23~52% 급증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세금 등으로 내는 돈도 늘었다. 특히 건강보험료 같은 공적 연금, 사회보험료 지출은 7.9%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의 실패로 건보료가 급등한 영향으로 보인다. 세금 지출은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자산 증가의 원인이 소득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주로 집값 상승에 기인하는 점도 문제다. 자산을 이루는 예·적금 등 금융 자산 보유액은 1년 새 7.8% 증가한 데 비해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은 그 두 배인 14.4% 늘었다. 특히 거주 중인 주택 가액 증가율은 20.7%에 달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져온 자산 거품인 셈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기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자산 가치가 크게 늘었겠지만, 무주택자는 오히려 내 집 갖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정부는 성급하게 자화자찬할 것이 아니라 통계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