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 시각) 터키 앙카라에서 한 남성이 달러를 터키 리라화로 바꾸고 있다. 식료품 등 기초생활용품을 사기도 어려운 소비자물가 급등에도 터키 중앙은행이 또다시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터키 리라화가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화 연합뉴스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또다시 사상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다. 치솟는 소비자물가에도 터키 중앙은행이 또다시 기준금리를 낮추면서다.

터키 중앙은행은 16일(현지 시각) 통화정책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14%로 1%포인트 인하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지난 9월 이후 넉 달째 이어지며 19%였던 기준금리가 5%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 발표 이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날 리라화 가치는 오전에 1달러당 15리라를 넘어섰으며, 금리 인하 발표 직후에는 1달러당 15.7리라까지 떨어졌다. 올해 초에만 해도 1달러당 7리라 초·중반에 거래됐다. 1년 새 리라화의 가치가 절반 아래로 떨어진 셈이다. 화폐가치가 폭락하며 물가는 급등했다. 지난 3일 터키의 공식 통계 조사기관인 투르크스탯이 발표한 1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1.3%였다.

리라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이 예상됨에도 중앙은행이 넉 달 연속 금리를 인하한 것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시중에 돈이 풀리며 상대적으로 물가가 상승한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며 수 차례 공개적으로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이를 거부할 때는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하기도 했다.

16일(현지 시각) 터키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50% 인상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정작 에르도안 대통령은 치솟는 물가로부터 터키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며 최저임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임금이 올라가면 시중에 풀리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에 물가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TV연설과 성명을 통해 “내년도 월 최저임금은 올해 2826리라(약 21만원)보다 50% 오른 4250리라(약 32만원)으로 정했다”며 “최근 50년 동안 가장 높은 인상률로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했다. 터키 전체 노동자의 약 40%가 최저임금 이하의 급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의 파격적 인상에도 달러로 환산할 경우 내년도 실질 임금은 올해보다도 낮다. 올해 초 환율로 올해 최저임금을 달러로 환산하면 약 380달러에 달했으나, 현재 환율을 적용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약 270달러에 그친다. 50% 인상에도 달러화 기준 실질 임금은 70%에 미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