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쌀 시장 격리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윤호중 원내대표, 송 대표, 박완주 정책위의장. /뉴시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8일 “공급 과잉에 따른 쌀값의 하락을 막기 위해 쌀 20만t에 대한 시장격리 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장 상황을 보면서 7만톤을 추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시장격리란 쌀이 지나치게 많이 생산될 경우, 시장에 물량이 과도하게 풀려 가격이 폭락하지 않도록 정부에서 매입하는 조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약 7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농민들은 일제히 반겼지만, 일각에선 “시장격리에 나설 정도로 쌀값 하락이 심각하지 않은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농민표를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쌀값 평년보단 높은 상태

이날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발표한 ‘쌀 시장격리 당정협의’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88만2000t으로 전년 대비 10.7% 증가했다. 쌀 수요량을 감안하면 약 27만t 이 남아돈다고 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10월 초와 비교하면 산지 쌀값이 10% 가까이 폭락했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달 쌀 도매 가격은 5만3024원(20kg)으로 전년 동기(5만6217원) 대비 5.7%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쌀값이 기록적인 장마로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급등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달 쌀값을 작년과 비교하면 하락했지만, 2년 전인 2019년 12월(4만7040원)과 비교하면 오히려 12.7%나 높은 가격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쌀 시장격리가 있었던 2017년(37만t)에는 쌀 가격이 3만원대 후반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35% 이상 비싸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들과 찰칵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에서 둘째) 후보가 28일 서울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요구

당초 기획재정부는 이런 이유로 쌀 매입에 반대했다. 양곡관리법에 따르면, 시장격리는 쌀 수확량이 수요량보다 3% 이상 증가하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하면 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하면 무조건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동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여야 대선 후보가 모두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농민들이 제값을 받아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기재부에 쌀 27만t 시장격리를 압박했다. 지난달엔 한 농민 행사에 참석해 “당은 제 페이스대로 많이 바뀌었는데 기획재정부는 죽어도 안 잡힌다”며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겨냥해 “맴매(매질)”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애타는 농민 외면 말라”며 30만t 시장격리를 요구했다. 이런 압박에 홍 부총리는 또 다시 ‘백기’를 들었다.

◇수백만 농민 표심 앞에 정책은 오락가락

정부는 올해 초부터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농축수산물 가격 안정 정책을 펼쳐왔다. 지난해 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대규모 살처분으로 올해들어 계란값이 50% 이상 폭등하자 정부는 미국·태국 등에서 계란을 수입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원유(原乳) 가격이 리터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2.3%) 오르자, 농식품부는 이를 막기 위해 가격 결정기구인 낙농진흥회 개회를 위한 행정명령까지 발동했었다.

그런데 쌀값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가격을 보전해주는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계란·우유 생산 농민들에겐 엄격하면서 쌀 생산 농가에만 관대한 것은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공익직불금(농업인 보조금)을 수령한 농업인은 112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수백만표에 달한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산란계 농민은 기껏해야 수천 명이지만, 쌀농사 짓는 분은 수백만명”이라며 “표가 되는 사람들은 달래고 안되는 사람들은 찍어 눌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