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은 올해 중국 내 이니스프리 매장 280곳 가운데 140곳을 폐점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에뛰드 매장 610곳의 문을 닫았고, 헤라와 아이오페 같은 브랜드도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하며 대대적 구조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 중국에서 K뷰티 열풍을 주도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입성했다. 하지만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본격화하자 해외 사업 매출의 70~80%를 차지하던 중국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LG생활건강 역시 중국 시장 실적에 따라 일희일비하기는 마찬가지 상황이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던 중국 시장이 양날의 칼이 된 것이다.
◇너도나도 차이나 엑소더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앞다퉈 떠나고 있다. 툭하면 터지는 한한령 같은 혐한 리스크,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 당국의 규제와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정상적인 중국 내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179만대를 판매하며 중국 시장 점유율이 10%에 육박했다. 하지만 사드 사태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확산하며 지난해 판매량이 50만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해외 첫 생산 기지였던 베이징 1공장을 매각했고, 베이징 2공장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서 중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삼겠다며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에 10년간 진행했던 렌터카 사업을 정리하는 등 대대적 중국 사업 구조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톈진 스마트폰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2019년 10월 후이저우 스마트폰 소재 공장도 폐쇄했다. 톈진의 TV 공장, 쑤저우 PC 공장과 LCD 패널 공장도 문을 닫았다.
국제 표준과는 거리가 먼 중국 당국의 규제도 한국 기업으로서는 치명적 위험 요소다. 대표적 업종이 게임이다. 4~5년 전부터 중국이 판호(허가증) 발급을 전면 중단하면서 게임업체 전체가 ‘중국발 리스크’에 빠져 있다. 연평균 200건의 중국 게임이 한국 시장에 출시돼 막대한 돈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지난 4년간 중국 시장에 출시된 한국 게임은 단 하나에 불과하다.
중국은 영화 산업에도 빗장을 걸었다. 중국 국가영화국은 2015년 ‘암살’ 이후 한국 영화 개봉을 한 건도 허가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오! 문희’ 심의를 겨우 통과시켰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의 중국 방문에 맞춘 1회성 이벤트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비롯해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던 수많은 영화가 이유도 모르는 채 개봉하지 못했다”면서 “앞으로도 전면 개방은 어려우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낭패를 겪는 기업이 늘어나다 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중국 시장 철수’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업체들까지 성행하고 있다. 한 중국 전문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중국 직원들이 기술만 배운 뒤 다른 회사를 차려 거래처를 가져가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국제 표준 없는 시장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에는 중국 산업 환경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뜩이나 한국 브랜드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동 부유 정책 영향으로 임금이 지속적으로 올라 생산 기지로서의 매력이 크게 떨어졌다. 중국 근로자 최저임금은 2016년 시간당 18.7위안(약 3500원)에서 올해 25.3위안(약 4700원)으로 35%나 올랐다.
중국 정부는 “핵심 기술 산업의 우리 기업 점유율을 70~80%로 끌어올리겠다”며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쟁자인 한국 기업들은 토사구팽 당하고 있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중국은 자국 배터리업체 육성을 위해 한국 기업들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보조금도 주지 않는다”면서 “사업을 유지하려면 시장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중국은 국제 표준이나 합리적 절차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