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창업진흥원은 5000만원을 들여 제작한 메타버스(3차원 가상현실) 앱을 공개했다. 이 앱은 4일간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지역 창업자 축제를 가상공간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하겠다며 만들었지만 몇 달째 아무도 찾지 않는다. 앱에 접속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차원으로 구현된 가상 건물 안에서 벽에 붙어 있는 정책 홍보 영상이나 참여 기업 소개 자료를 보는 것이다. 창업진흥원에 따르면 누적 방문자는 489명이다.
인천광역시 서구는 지난달 2000만원을 들여 구청 홈페이지(‘소통1번가’)를 홍보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었다. 플랫폼에 접속해 보면 3차원으로 구현된 공간에 기존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버튼을 만들어 놓은 게 전부다. 서구는 현재 1억6000만원을 들여 ‘가상 구청’을 제작하고 있다.
‘메타버스 열풍’에 편승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공 메타버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콘텐츠가 빈약한 데다 사용성도 떨어져 세금 낭비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별도 앱이나 PC 버전으로 제작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의 개발·운영비는 연간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0억원에 이르고, 네이버 제페토 같은 민간 플랫폼 안에 구축하는 가상공간도 디자인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조달청 용역 입찰 시스템인 나라장터에서 확인한 결과, 지난 1년간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50여 건의 메타버스 구축 용역을 발주했고 여기에 투입된 예산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100억원이 넘는다.
난립하는 ‘공공 메타버스’의 공통점은 이용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는 수십 개의 서울 정부기관·지자체의 공간이 들어섰지만 대부분 누적 방문자 수가 수백 명에 그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어린이 청소년 시민발언대의 공간은 지난해 10월 오픈 후 350여 명만 이용했고, 서울혁신파크 가상공간은 지난해 11월 공개 이후 누적 방문자가 460여 명에 불과하다. 서울혁신파크 가상공간은 사기업이 먼저 기관에 제안해 만들어졌고, 기업 측에서 관리를 맡고 운영 비용을 지원한다.
대부분 최소 비용으로 구색만 갖추다 보니 콘텐츠와 기능도 빈약하다. 경북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유산을 3차원으로 구현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며 지난달 7000만원짜리 용역 공고를 냈다. 재단 측은 이 금액으로는 메타버스 안에 안동 병산서원의 배롱나무와 만대루의 3차원 이미지 정도만 겨우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전국 수십 곳의 공공 도서관들이 앞다퉈 구축한 ‘가상 도서관’은 무늬만 도서관이다. 제페토에 입주한 경기 성남교육도서관은 ‘시공간 제약 없는 도서관’이라고 홍보됐지만, 실제로는 텅 빈 책꽂이와 의자·책상이 가득한 방이 전부다. 하루 방문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정부기관에서 불필요하게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공공기관 최초로 메타버스를 활용한 창립 기념식을 열었다고 홍보했다. 30여 명의 직원들이 참석한 내부 행사를 위해 2000만원짜리 메타버스 플랫폼을 별도 제작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5일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서 1000만원을 들여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 명씩 나와서 발표하는 형식이라 ‘줌’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한 화상회의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