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2000년에는 주식 거품(닷컴버블), 2008년에는 부동산 거품(글로벌 금융위기)이 원인이었는데 지금은 주식과 부동산 모두에 그때보다 더한 거품이 끼어있습니다. 그만큼 더 크게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 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11일 인터뷰에서 “그간 저금리 영향으로 부풀어 올랐던 미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며 이 같이 경고했다. 전날 미국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7.5%)이 40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는 발표 이후 나스닥이 2.1% 떨어지는 등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는 “올해 미국 증시는 S&P 기준으로 20% 이상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증권가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등을 지낸 김 교수는 2001년 9·11 테러 직전의 주가 폭락과 반등,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의 위기와 거품 붕괴를 정확히 전망해 ‘한국의 닥터둠(doom·파멸)’로 불리는 김 교수는 작년 하반기부터 버블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그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내놓은 올 1분기 미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14%로 작년 4분기(6.9%) 보다 크게 하락한 점을 들며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실제 지난달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2%에서 4%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그간 미 증시를 떠받쳤던 저금리와 경기 모두에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주가가 크게 무너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런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하는 경제 지표들이 적지 않다. 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 비율을 뜻하는 ‘버핏 지수’가 현재 약 330%로 2000년 이후 평균치 180%를 크게 웃돌고 있고, 미국 가계의 금융 자산 중 주식 비율이 53%로 2000년대 초 IT 거품(48%) 때나 2008년 금융 위기 직전(47%)보다도 훨씬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20대 도시 주택가격지수는 2012년 3월부터 작년 12월까지 무려 107% 올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에 근접했다. 한국 역시 금융 자산 중 주식 비율이 지난 2분기 22%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는 상황이다. 위험 자산인 주식에 투자하는 비율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음을 뜻한다.

미국 시가총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버핏 지수' 추이. 지난 5년 사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사상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블룸버그 기준 버핏 지수는 김영익 교수가 언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 자금순환 통계 기준 버핏 지수와는 약간의 기준 차이가 있지만, 계속 오르고 있다는 추세는 같다.) /블룸버그

문제는 2000년 닷컴 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비해 현재 미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미 연방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30%에 달해 돈을 쓸 여력이 별로 없다”며 “즉 이전만큼 통화정책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경제 회복 속도가 매우 느릴 것”이라고 했다. 견실한 마이크로소프트가 닷컴 버블 이후 제자리로 오기까지 10년 넘게 걸린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투자자들이 좀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요즘 젊은 경제 유튜버들을 보면, 최근 10년 간 미국 주가가 우상향했다며 경제 체질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데 그건 시기에 따라 다르다”며 “2000년대 10년은 못 올랐었다. 앞으로 10년이 바로 그 때와 같거나 오히려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상반기 중 금리를 생각보다 더 빨리 올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씨티그룹은 연준이 3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등 연말까지 총 1.25%포인트 올릴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오는 7월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 가량 올릴 수있다”고 했다. 연준이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은 2000년 5월 닷컴버블 때가 마지막이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 2015년엔 0%대로 매우 낮았지만 지난해 12월엔 7%까지 치솟았다. 점선은 미 연방준비제도의 물가상승률 관리 목표치인 2%. /미 고용통계국, FRED

이렇게 미국 증시가 휘청대면 우리 증시는 어느정도 타격을 입게 될까. 김 교수는 “코스피도 올해 상반기 중 2500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최소 4년간은 미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수익률을 낮추고 아시아나 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릴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윳돈이 있다면 타이밍을 보다 주식 저점매수에 나서는 것도 추천했다. 김 교수는 “산업의 쌀인 반도체나 2차전지, 메타버스 등 성장 추세인 업종들은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현금을 비축해야 할 시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