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②편에서 계속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대화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종합부동산세에 이어 다른 경제정책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윤 당선인은 재정정책을 어떻게 써야 하나?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당분간 재정적자 확대는 불가피한가?
“미국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경제학 원론(Principles of Economics) 교과서의 필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한국에 와서 강의도 한 적이 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1달러의 지출은 1.57달러의 GDP(국내총생산)를 창출한다고 케인즈학파들이 밝혔지만, 최근에는 1달러의 감세가 3달러의 GDP를 창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더 좋은 정책은 적자재정의 감세(deficit-financed tax cuts)라는 연구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EU(유럽연합)의 국가채무 가이드라인이 GDP의 60%인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경제위기를 불러온다면 기업에 대한 채무상환유예(moratorium)와 적자재정의 감세를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 때는 지구적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기 때문에 선제적(preemptive)이고 결정적(decisive)이고 충분한(sufficient) 대응책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적자지출 보다는 감세가 생산적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재정적자가 급증했다. 예산 지출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재정적자의 규모보다 용도와 지출의 생산성을 생각해야 한다. 맨큐 교수가 얘기한대로 적자지출보다는 감세가 훨씬 생산적이라 생각된다. 내가 정부에서 일할 때 감세정책을 쓴 근거가 이것이었다. 감세로 경제가 살아나 GDP가 커지면 국가의 세금 수입이 더 늘어난다. 감세정책은 그런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감세정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증세정책이라 할 수 있다.
동서고금 모든 역사에서 국고를 관리하는 장관은 세금을 많이 받는 방법에 골몰한다. 장기적인 증세를 위해 단기적인 감세 전략을 쓰는 것이다. 분모(GDP)를 늘여서! 그래서 감세 정책은 형식상으로는 세율을 낮추는 감률정책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증세정책의 다른 수단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인구가 줄면 무슨 수를 써도 성장잠재력이 줄어든다. 우수한 인재를 누가 많이 확보하느냐가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미국의 경쟁력은 이민에서 생겨난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비공식으로 1000만명에 달하는 해외동포를 국내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이민족의 이민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재외동포는 상대국이 허용하는 한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이민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입출국이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R&D(연구개발)의 지속적 확대다. 2008년 R&D 세액공제를 인건비에도 허용하고, 정부 예산과목의 첫장을 R&D로 하는 노력을 했다. 그랬더니 2012년에 공공 부문의 R&D 투자액이 GDP 대비 1.09%, 민간 부문은 3.27%, 합쳐 4.36%로 세계 1위 R&D 투자국이 됐다. 기업 단위로 보면 삼성전자가 같은 해 83억 유로를 투자해 독일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에 이어 세계 2위를 했다. 일부 공공 부문 R&D가 낭비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런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 새 정부가 이러한 기본 정책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기업 돕기 보다는 가만 놔둬라
—지난 5년간 정부가 친노조 정책을 시행하면서 기업가 정신이 많이 쇠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경제가 살아나려면 기업가 정신도 부활해야 할텐데.
“오랫 동안 정부에서 일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정부가 기업을 돕는 것보다는 가만 두는 것이 최고의 지원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세나 금융 지원, 공정거래를 통한 중소기업 지원 등 필요한 최소한 이외에는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기업을 옭아매는 것은 실무자나 부처의 이기주의가 주된 이유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관심 하나에, 또 장관의 아마추어적인 지적 하나에 법이 만들어지고 규정이 만들어지고 담당자가 생겼다. 그 결과 기업은 원하지도 않는 지도를 받고, 이유도 모르는 매를 맞고, 더하여 벌금이라는 맷값도 내고, 매를 치는 공무원을 먹여 살려야 했다.
청와대가, 그리고 장관이 아마추어적인 관심을 거두고 가만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아마추어가 의욕적일수록 규제는 늘어나고 기업은 괴롭다. 기업이 더 현명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만 잘 하면 된다. 새 정부마다 규제완화, 규제혁신, 규제샌드박스를 들고 나왔지만 결과는 항상 규제가 늘어나는 쪽으로 끝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윤 당선자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제팀을 잘 꾸려야 한다. 경제팀을 꾸릴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배우 출신이었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경제 정책을 가장 잘 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자신의 통치 철학에 맞고 능력 있는 사람을 잘 골라 썼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 D.C.의 공항 이름을 로널드 레이건 국제공항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봐서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제발 행정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를 쓰지 말기를 바란다. 일본에서는 학자는 학자의 영역을 지킨다. 미국 대학교수는 행정부에서 중간 간부부터 일해 경력이 쌓아져야 다시 차관도 하고 장관도 한다. 교수에서 바로 장관으로 뛰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행정은 이론이 아니라 기술이다. 자동차학 박사라고 해서 버스 운전대를 처음 잡은 사람이 종로 바닥에서 바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항상 훈수만 했고 일개 분대 병력도 지휘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단 병력을 지휘하겠나? 아마추어가 장관으로 오면 장관 학습시키는데 몇 달이 가고, 학문적 이론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다가 떠난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미국 같이 차관보부터 시켜보면 좋을 듯 한다. 오래 훈련되고 검증된 사람을 쓰면 밑져도 본전은 된다.”
인수위의 권력 갈등
—대통령 취임 후 시행할 경제정책의 방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이미 윤곽이 잡힌다. 인수위원회 구성할 때 유의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인수위원회 같은 조직은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내가 재정경제를 담당하는 분과위원회의 분과위원장 격인 간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보니 인수위는 ‘작은 권력투쟁’의 전장이었다. 권력 실세의 지원을 받아 정부나 관련 기관에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서로 권력투쟁을 하다 보니 권력 실세들간의 갈등이 표출됐다.”
—어떤 갈등이었나?
“권력 실세들이 인수위 조직안을 만들었는데 C 의원이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새로 끼어들고 싶은 사람들은 C 의원의 아성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 갈등이 대외적으로 불거지면서 C 의원이 정권과 멀어지게 됐다.”
—인수위원회의 성과가 나중에 정책으로 많이 이어지나?
“인수위원회라는 것이 항상 경험 없는 사람이 많이 모인다. 사명감과 전문지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분과위원회 별로 한 건씩 해보겠다고 다투어 보고서를 만들어 냈다. 경쟁적으로 보고서 내용을 부풀리기 일쑤여서 보고서를 쌓아 놓으니 사람 키만큼 커졌다.
그러나 인수위가 끝나고 나면 아무도 그 보고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결국 휴지조각이 됐다. 대통령이 그 많은 보고서를 보겠나? 철학과 실력을 겸비한 어떤 장관이 남이 책임감도 없이 만든 보고서를 따라하겠나? 낭비이고 잡음만 났다.”
인수위 운영의 개선점
—그러면 인수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과 같이 운영해야 낭비와 말썽이 없다. 부처별로 장관을 맡을 사람을 분과 책임자로 만들고, 그 사람을 통해 인수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미국같이 3000명에 달하는 정무직을 선정하기 위한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수위의 경제팀장은 향후 기획재정부 장관할 사람이 맡아 차기 정부의 재정금융정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백서를 만들고 관련 기관이 어떤 일을 할지 정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법이 개정되길 바란다.”
강 전 장관이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김대중 당선자 인수위 시절에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공무원들을 불러서 전쟁포로 다루듯이 야단을 치곤 했다. 왜 정책이 이렇게 됐냐고 따졌다. 그러나 공무원을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 직업공무원은 명백히 위법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정책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헌법이 말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은 헌법이 말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통한다. 재직 중에 야당 후보의 공약을 비판한 공무원도 정권이 바뀌면 반대소리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종부세 폐지에 반대했던 공무원도 정권이 바뀌면 종부세 폐지에 찬성해야 한다. ‘영혼이 있는 공무원’은 정무직으로 충분하다.”
대통령들은 왜 불행하게 끝났을까?
인터뷰를 시작한지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다. 강 전 장관은 그의 오랜 경제정책 경험을 특유의 솔직담백한 직설법으로 담담하게 털어놨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내 경제난에 맞서 국익을 위해 경제팀을 이끌며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던 야전 사령관의 고뇌와 과감한 결단, 추진력, 전흔(戰痕)이 전화기 너머의 육성에서 배어나왔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사람만이 아는 국정운영의 뒷얘기와 노하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끝낼 때가 됐다. 마지막 질문으로 많은 국민들이 수없이 제기했던 사항을 골랐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뜨거운 충정에서 출발했다가 불행한 결과를 맞을까?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갈 때에는 잘하려는 다짐으로 가득한 것을 눈으로 보았다. 대통령뿐 아니라 비서관들까지 모두 그렇다. 그들은 ‘국민 통합, 공정한 인사, 규제 완화!’를 외친다. 그러나 결과는 이번 정부의 ‘일자리 현황판’ 같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한가지, 인사권은 권리가 아니라 권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권리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만, 권한은 법의 원칙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행해야 할 의무가 따르는 것이라고 헌법과 법률 교과서는 말하고 있다. 더구나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리가 아니라 오히려 고유의무라고 말하고 싶다.”
강 전 장관이 옛 기억을 끄집어 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약 10년 가량 하신 분에게 오래 전에 다른 간부들과 함께 설날 세배를 갔던 적이 있다. 그 분이 자신의 경험을 후진들에게 꼭 전해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말한 것이 있다.
청와대에 인사비서관과 사정비서관을 두지 말라. 그 자리를 두면 산하기관의 장까지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어 장관이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장관이 해야 할 일을 대통령이 대신 하게 된다. 대부분은 비서관들이 대통령을 업고 호가호위하여 말썽과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 공무원의 안위와 자리를 쥐고 있는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내가 대통령께 건의해 인사비서관과 사정비서관을 없애는데 몇 년이 걸렸다. 대통령은 유능한 장관을 임명하고 그를 통제하는 직무로도 힘들다.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사실 대통령에게 인사·사정 비서관은 별로 필요가 없다. 대통령은 장관 인사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이 분이 없앤 시스템이 전두환 대통령 때 다시 부활했다. 지금까지 부처 산하기관 임원의 인사까지 청와대가 개입하고 있다. 어떤 때는 정부 부처 과장 인사까지 관여했다고 들었다.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운용하는 방식과 행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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