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실정(失政)을 극복하고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재건축 재개발은 겨우 하강세로 돌아선 주택 가격을 상승세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 또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세제 개편이 세수 감소로 이어질 경우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지출이 필요한 대선 공약은 실현이 불가능해진다. 글로벌 경제 환경도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다.
역대 대통령 당선인의 상황을 되돌아 볼 때 윤 당선인이 처한 국내외 경제 환경은 2007년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과 많이 닮았다. 이 대통령은 전임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과 세금 정책 실패에 고통 받던 주식회사 한국을 인수인계 받았다. 취임 첫해인 2008년에는 뉴욕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쓸면서 한국경제도 휘청거렸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을 거친 경제 전문가였지만, 윤 당선인은 법률 전문가라서 경제 분야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유능한 경제팀을 발굴해 이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경험이 한국경제의 앞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강 전 장관은 이 대통령을 대선 캠프부터 측근 보좌하면서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를 만들고 집행한 사람이다.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이어서 직접 만나러 가는 대신 스마트폰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너머로 또렷하고 에너지 넘치는 예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전 장관은 “2008년 뉴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에도 그 여파가 나중에 한국에 그렇게 크게 나타날 줄 몰랐다”며 “윤 당선인은 부동산과 세금 문제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도 큰 위기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치 측근들의 권력투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며 “이러한 불행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취임 후 정부에서 정책을 실제로 집행할 사람 중심으로 인수위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3가지 핵심 경제현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를 운용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3가지를 든다면?
“코로나 사태 피해업체의 구제나 부동산 시장의 안정도 새 정부가 당면한 중대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경제의 수출입 의존도가 70% 전후로 높기 때문에 지금같이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문제로 지구경제가 불안할 때는 대외균형을 우선하는 정책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 세계경제가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험 국면으로 들어설 것에 대비해 3개 분야에 대한 정책을 우선적이고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대외균형 유지를 위한 환율정책을 우선 추진하고, 국내물가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감세정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둘째, 코로나 사태에 의한 자영업자 피해보상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기업이 도산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애로 기업의 금융채무와 조세채무를 미뤄주는 조치도 추진해야 한다.
셋째,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재산세로 통합하고, 그린벨트 해제와 용적률 개선 등을 통해 주택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2022년 현재의 한국경제 상황을 비교하면?
“지금의 경제 상황은 코로나 팬데믹(전염병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해 지구적 위험 국면으로 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이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외환보유액도 충분해 대외지급에 문제는 없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으면 원유와 원자재 시장은 어쩌면 2008년보다 경제위기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가 닥쳐왔을 때는 남에게 배울 게 없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니까 직관과 용기로 ‘선제적(preemptive), 결정적(decisive), 충분한(sufficient)’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vs 코로나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사태의 공통점은?
“첫째, 위험이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이다.
둘째, 위험이 단기간에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셋째, 특정 국가의 노력만으로 위험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차이점은?
“첫째, 2008년 위기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의 내부 문제 때문에 발생했는데, 지금의 난국은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경제 외적인 문제가 원인이다.
둘째, 지금의 난국은 경제정책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이 2008년의 경제위기보다 더 길고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외교안보와 보건행정이 함께 하는 통합적인 진단과 대응책이 필요하다. 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하므로 국제적 협력, 특히 동맹인 미국과의 협력이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유사시에 한국의 원화를 미국에 맡기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300억달러를 빌릴 수 있는 한미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2008년 지구 반대편의 뉴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에도 한국경제에 미치는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지금은 별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상황이 갈수록 악화될 수 있다. ‘유럽의 빵바구니’인 우크라이나에서 1~2년 동안 곡물 생산이 어려워지면,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밀가루, 원유, 석탄 가격이 얼마나 올라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경제위기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외교안보 차원에서만 이 문제를 다루고 경제팀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걱정된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외환보유액은 충분한지 점검하고, 해외에 투자한 달러는 필요한 외화 유동성(자금)만큼 회수해 쌓아 두어야 한다.”
글로벌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우크라이나 사태를 그렇게 심각하게 봐야 하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금융시스템이 문제가 되었는데 원유를 필두로 밀가루와 옥수수 등 대부분의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농산물 생산이 안되니 물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 올 것이다. 전세계 공급망이 코로나 사태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강 전 장관이 말을 이어 나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전쟁이 오래가면 주식시장 뿐 아니라 원자재 시장과 실물 경제가 구조적인 장애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상되기도 한다. 금융위기가 터지면 단기간에 주가가 폭락하니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다. 이에 반해 농산물과 원유 문제는 아직 비축분이 있어서 예컨대 1년 뒤에 상황이 악화되니 별로 걱정을 않는다. 하지만 원유와 석탄이 부족하면 전력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 사람들이 지금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어떻게 대응했나?
“2008년 위기 때 지구는 생존 게임(survival game)에 들어갔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각국은 살아남기 위해 ‘선제적, 결정적, 충분한’ 정책들을 경쟁적으로 쏟아 부었다. 우리도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를 대내 문제가 아니라 대외 문제에 뒀다. 먼저 경상수지를 흑자 기조로 전환시키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썼다. 그러자 수입물가가 올라갔다. 지금처럼 원유와 곡물 가격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물가를 완화시키기 위해 거의 전 품목의 원자재에 할당관세와 휘발유세를 크게 인하했다.
또 근로소득세를 내리는 등의 감세정책과 함께, 재정여유자금을 동원해 ‘유가환급금’이라는 이름으로 근로자들에게 24만원씩 지급했다. 그것이 정부가 현금을 살포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리고 미국·일본·중국과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스왑협정을 체결해 국가부도 방지책을 마련했다. 금리도 내렸다. 감세, 재정지출, 유동성(자금) 지원을 총동원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인 GDP(국내총생산)의 7%를 위기 극복에 투입했다.”
경제위기 때는 과감하라
—결과는?
“위기 이듬해인 2009년에 OECD 회원국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우리는 플러스 성장을 했다. 수출도 세계 12위에서 7위로 상승해 외환보유액을 3600억달러까지 쌓아 처음으로 순대외채권국이 됐다. 사상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일본을 앞질러 ‘AA’가 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미국 GM과 세계 최대 은행인 미국 씨티은행도 구제금융으로 살아남을 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세계적 회사로 변신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제위기는 기회였다. 한국은 위기에서 살아남아 강자가 됐다.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은 그만큼 중요하다.”
—정책 실무자들이 참고할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금융위기가 오면 전세계 금융거래가 위축되면서 외국의 금융회사나 기업들이 국내 금융회사나 기업과 거래를 꺼리는 경우가 생겨난다. 그래서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식으로 대외신인도를 높여줘야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연간 대외결제금액이 최고로 봐서 250억달러였으니 500억달러만 해주면 충분하다고 실무자들이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1000억달러를 지급보증해주라고 했다. 국회 승인을 받는 문제가 있었으나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파격적으로 1000억달러 보증을 해주면 상대방을 안심시켜 거래가 예전처럼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보증액이 작을 경우 거래가 중단되면서 생길 수 있는 손실마저 입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이 조치가 효과를 내면서 결과적으로 보증이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위기 때에는 이렇게 국제금융시장이 놀랄만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현장 사령관이 직관적이고 창의적으로 판단해 총도 쏘고 대포도 쏴야 했다.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책에서 과거 사례를 뒤져볼 여유가 없었다.”
종부세 폐지를 추진하다
대외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국내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실정(失政)은 부동산 정책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윤 당선자가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써야 하나?
“정부에서 일할 때 두 번 부동산 대책을 집행하여 시장을 안정시킨 경험이 있다. 하나는 일본에서는 후지산 꼭대기 가격도 오르고 한국에서는 한라산 백록담 가격도 오른다던 1978년에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8·8 부동산 종합대책’을 실무 작업했다. 2008년에는 강남 아파트 가격이 2배로 뛰어 노무현 정부가 ‘헌법보다 개정하기 힘든 대못’이라고 박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인하하고,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해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린 일이 있다.”
—당시 부동산 안정을 위해 세금 정책은 어떻게 썼나?
“세금 부담을 늘려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지 않고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없었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번 돈에 매기는 것이고 시장의 강자는 약자에게 세금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동산 보유세를 낮추어 세금의 전가를 막고 공급을 늘려 수요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고교평준화에 따른 사교육 문제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강남의 경우는 또 다른 문제지만.”
대선에서 확인된 ‘종부세 벨트’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처럼 종부세를 강화했는데.
“종부세로 투기를 막겠다는 것은 가격과 세금을 동시에 올려 집 없는 자와 집 있는 자 모두에게 고통을 안기는 결과만 낳게 된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종부세는 강남 유권자의 70%가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주는 효과를 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서울 25개 구에서 문재인 후보가 이겼는데,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남북으로는 종로에서 강남까지 동서로는 양천에서 강동까지 14개구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 여기에는 종부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새롭게 형성된 ‘동서남북 종부세 벨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도하고 불공평한 세금은 로마제국도 허물어뜨렸다.”
—종부세에 대한 견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내가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어 실무자에게 종부세를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청와대 지시로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장관 시절에 ‘종합부동산세는 동서고금 어떤 나라에서도 시행한 것을 보지 못했고, 공평성, 보편성, 충분성 등 조세 원칙의 어느 하나에도 맞지 않는, 세금이라는 이름을 빌린 정치폭력'이라고 답변해 야당의 심한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왜 빌딩도 오피스텔도 주식도 빼고, 투기와 아무 관계 없이 아파트 한 채에 눌러 사는 은퇴자도 약탈적으로 과세하나? 하려면 함께 해야 하지 않나?’라고 묻기도 했다.
내가 종부세를 폐지하려 할 당시에 청와대에서도 다수가 ‘1%에 대한 질투의 경제학’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며 종부세를 전면 폐지하기는 어렵다고 반대했다. 대신 단계적으로 재산세와 통합하는 방법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도 지금까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부동산 세금 개편은 이렇게
—종부세와 재산세, 즉 부동산 보유세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예전에 IMF(국제통화기금)가 보고서를 내면서 우리나라에 부동산 보유세에 대해 권고한 적이 있다. 재산세 또는 보유세는 거주민들이 지방정부의 행정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이기 때문에 1% 전후의 단일세율로 해야 한다고 했다. 햄버거 가격을 가난한 자에게 싸게, 부자에게 비싸게 받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의 빈곤퇴치 문제는 재정 지출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부동산 거래세는 거래 당시 소득이 있으므로 부담이 가능하지만 보유세는 배후에 소득이 없어 과중한 부담은 감내가 안된다는 뜻이었다. 미국에서는 재산세를 교육 재원으로 충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 학교에 보낼 아동이 없는 경우 면제하거나 경감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아파트 관리비가 서비스 요금이라 주택 가격에 따라 누진해 부과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보유세가 낮다는 것도 어딘가 통계상의 착각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보유세는 너무 높다.”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도 단일세율로 매겨야 한다는 뜻인가?
“지금 재산세나 종부세는 보유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수입이 없는 은퇴자가 강남에 종부세 대상 아파트에 살면 결국에는 집을 팔아야 세금을 낼 수 있는 일종의 ‘몰수형벌’에 해당하는 위헌적 조세라는 주장도 있다. IMF 회원국 중에서 재산세를 누진제로 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새 정부는 어려워도 이런 점을 바로잡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 생긴 서울의 ‘동서남북 종부세 벨트’의 표심도 잃게 된다.”
적절한 주택 가격은?
—부동산 가격이 어느 정도 되어야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나?
“적절한 부동산 가격이란 나라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PIR(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비율)을 기준으로 볼 때 선진국들은 과거에 2~3, 즉 2~3년의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의 어느 지역인가 PIR이 20이라고 나왔는데, 평균 근로자가 20년간 한 푼도 안 쓰고 월급을 모아야 집을 산다는 이야기이니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PIR이 5 이상이면 스스로 집을 마련하기가 어렵고, 또한 경제도 지탱하기 힘들다고 한다. 같은 월급을 놓고도 노조는 저임금이라고 하는데 반해, 기업은 고임금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런 잘못된 주택가격이 있다. 또 고교 평준화로 비롯된 사교육 수요가 주택 가격 상승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노조가 저임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는 뜻인가?
“우리나라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만5000달러(약 4320만원)나 된다. 이렇게 연간 소득은 높지만 재산과 관련해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20년을 벌어도 집을 못사는 한국인과 좋은 직장만 잡으면 바로 집을 살 수 있는 미국인의 소득 만족도는 다르다. 주택가격과 사교육비까지 따지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저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과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노조 갈등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무부에서 조세·금융·국제금융 정책을 두루 담당한 까닭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종부세 이야기에 막힘이 없었다. 대화가 다른 경제정책 분야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야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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