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이기는 정부는 없습니다. 국민들은 성장 못하는 것은 용서해도 인플레이션을 못 막으면 분노할 겁니다.”
지난 주 주요 부처 업무보고를 끝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토요일인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 산하 서울창업허브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180여명의 인수위원, 전문·실무 위원들이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해 차기 정부 국정과제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당선인은 개회식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실용주의이고 국민의 이익, 경제”라며 “다른 것은 생각할 게 없다”고 말했다. 2개의 강연이 있었는데 모두 경제·산업과 연관된 주제였다.
◇일정까지 바꿔 경제 강연 경청한 당선인
첫번째 강연은 ‘글로벌 환경 변화와 한국경제의 대응방향’이라는 주제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김형태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강연했다. 그는 세계은행 컨설턴트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원래는 경제1분과 인수위원인 김소영 서울대 교수가 강연을 하려 했으나 “민간으로부터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안철수 인수위원장 의견을 반영해 지난 주 김 전 원장으로 연사를 긴급히 바꿨다. 주변의 추천을 받아 분과별 간사들이 김 전 원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당초 개회식에만 참석하고 퇴장하려던 당선인도 김 전 원장 발표까지 듣겠다며 즉석에서 일정을 바꿔 남았다.
◇인플레 잡고, 경제안보시스템 갖춰야
김 전 원장의 제안은 크게 네가지로 구분됐다. 첫째,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향후 5년을 정의하는 용어는 ‘분리의 부활’, ‘새로운 중세’다”며 “자유무역,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사라져 세계적으로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2010년 아랍의 봄, 올초 러시아군까지 투입된 카자흐스탄 소요의 발화점이 음식료값과 가스값 폭등이었던 점을 예로 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90%를 웃도는 점도 40년만의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둘째는 경제 안보 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상설 한미 통화스와프(맞교환)를 해야 한다고 김 전 원장은 주장했다. 현재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은 국가·지역은 영국·유럽·일본·스위스·캐나다다. “큰 금융 위기가 오면 외환보유액이 날아가는 것은 순식간인데 한미 통화스와프를 맺으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특별한 안보 파트너이므로 그간 위기 때에만 맺어온 통화스와프를 상설화해야 합니다.”
다만 최상목 경제1분과 간사는 강연 뒤 질의응답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를 공개 거론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인수위 의견인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김 전 원장) 개인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은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에 한국 증시가 포함되는 것도 경제 안보의 일환으로 봤다. 그는 “고교에서 1등을 해도 대학 가는 것과 같지 않다”며 “선진지수에 들어가야 우리나라에 투자되는 자금의 퀄리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머징지수에서는 조금이라도 경제 환경이 불안해지면 돈이 확 빠지지만, 선진지수에서는 그런 경향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 연기금 중에는 이머징지수에 투자하지 않는 기준을 가진 곳도 적지 않다.
그는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23% 정도인데 외환·주식 시장 의존도는 훨씬 높다”며 중국과 경제 동조화 탈피도 제안했다.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중병을 앓는 구조가 됐다는 말이다. “중국과 경제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지만, 어떻해서든지 한국 기업·정부가 독자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부채 줄이고, 해외 투자 통한 경상흑자 늘려야
셋째는 부채를 줄이라는 제안이었다. 그는 “정부부채, 가계부채를 합하면 우리가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며 “작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51%인 정부부채는 4년 뒤인 2026년 67%로 높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EU 재정준칙 기준(60%)을 웃돌 경우 재정건전성에 대한 외부 평가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방만한 재정과 정부부채 급증은 국가 부도 위험 수치(CDS프리미엄)를 높일 가능성이 커지므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해외 투자를 통한 경상흑자를 도모할 것을 요청했다. 경상수지는 무역·소득·이전 수지로 구성되는데 한국은 무역수지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구조다. 하지만 무역적자는 작년 11·12월 두달 연속 적자를 냈다가 1월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다. 김 전 원장은 “이웃 일본의 경우 무역은 적자와 흑자를 오가지만 자본의 해외 투자를 통한 소득수지가 높아 경상흑자를 이어가는 중”이라며 한국 경제의 수익원을 구조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두번째 강연은 KT 융합기술원의 배순민 AI2XL 연구소장이 ‘AI에서 메타버스까지 디지털 변화’로 강연했다. AI2XL은 사물을 구분하는 컴퓨터 시각 능력 등을 연구하는 KT 내 부서다. 이 세션의 주제와 연사 역시 안철수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코로나로 무너진 경제가 재도약하는 것이 차기 정부 국정운영 중점”이라며 “이를 위해 디지털 전환을 제대로 해야 하고 당선인도 그래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디지털 패권국가’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