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인사청문회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향후 통화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 과제로 가계부채 관리를 꼽았다.

이 후보자는 1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팀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가계부채를 잡을 수 있도록 한국은행이 분명히 신호를 주고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단기적 위험 요인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했다. 국내 가계부채는 작년 말 기준으로 1862조원으로 최근 3년 사이 326조원 불어났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135조원이 늘었다.

이 후보자는 “(가계대출이 많은 상태에서는) 이자율에 따라 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다”며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 나이 많은 분들이 은퇴 후 생활 자금을 위해 가계대출을 받기 시작하면 가계대출의 퀄리티(질)도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가계부채 문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정부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이 후보자는 강조했다. 그는 “총재가 되면 가계대출 문제를 금융위원회와 함께 다시 보겠다”며 “정부랑 대화 안 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일 오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다른 나라들도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했다. 그는 “최근 중앙은행들의 정책도 큰 틀에서 물가, 성장, 금융 안정, 거시경제를 종합적으로 보고 정부 정책과의 일치성, 일관성도 고려하며 서로 협조하는 가운데 물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까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향후 통화 정책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매파(통화 긴축 선호),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이렇게 나누는 건 적당하지 않고 데이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어떻게 정책을 조합해야 정부와 잘 어울리는지가 중요하다”며 “어떤 경우엔 매파, 어떤 경우엔 비둘기파일 것 같다”고 했다. 경기 상황에 대한 통계 등을 중시하는 ‘데이터파’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상황에 따라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지만 이날 가계부채 안정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다소 매파적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 후보자는 “상반기의 경우 부득이하게 한은의 예상(3.1%)보다 높아질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결책을 찾지 못해 인플레이션을 추가로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이 후보자의 가계부채 안정 발언도 이어지면서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전날보다 0.121%포인트 오른 연 2.784%로 마감했다. 2014년 6월 12일 이후 최고치였다.

이 후보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빠른 금리 인상으로 한·미 간 기준금리 차이가 줄어들거나 역전돼 자본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은 당연히 있지만 자본 유출에 주는 영향은 작다고 본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1.25%로서 미국(연 0.25~0.5%)과 0.75~1%포인트 차이다. 이 후보자는 “자본 유출 가능성은 금리뿐 아니라 환율 변동에 대한 기대 심리, 경제 전체의 기초 체력 등 여러 변수에 달려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자본 유출이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며 “2018~2019년은 금리 역전이 있었지만 자본이 오히려 순유입했다”고 했다.

경기 하강을 우려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이 후보자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경기 하방 리스크(위험)가 실현됐을 때 물가에 더 영향을 줄지, 성장에 더 영향을 줄지는 분석을 해봐야 한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금융통화위원들과 함께 현실화한 변수가 성장과 물가 어느 쪽에 더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서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