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지면서 연금 개혁이 차기 정부의 급선무로 부각되고 있지만, 정작 개인·가구별 연금 수급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포괄적인 연금통계는 어느 부처에도 없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개인연금은 국세청, 주택연금은 금융위원회·주택금융공사 등 연금 종류에 따라 담당하는 부처가 제각각이다. 이로 인해 고령자 가구가 각종 연금을 합쳐 한 달에 얼마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진단과 원인 파악이 제대로 안 되니 대책도 ‘땜질식’에 머무른다. 문재인 정부는 노인 일자리에 5년간 6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대부분 풀뽑기·골목청소 등 단기 일자리 제공에 그쳤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公的) 연금으로 부족한 노후 생활자금을 사적(私的) 연금으로 메꾸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몫이 됐다.
◇부처 간 통계 칸막이에 국가 문제는 산으로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에 직면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는 1위이고, 출산율은 꼴찌다. 이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가 연금 고갈, 성장률 감소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확한 통계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체제상 우리 정부에서 통계를 담당하는 통계청은 제대로 된 자료를 제공하지 못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유 아래 각 부처들이 각자의 통계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각 부처의 연금 관련 자료를 합쳐보겠다고 제안해 정부 부처들이 합의하는 데에만 1년이 흘러갔다. 올 초에는 통계청이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 계획’을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안건으로 올렸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 국세청 반대로 무산됐다. 자료 수집 등 본격적인 작업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류근관 통계청장은 “연금개혁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로 골든타임을 놓칠까 걱정스럽다”며 “환경 변화는 빠른데 의미 있는 통계 생산은 턱없이 느리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관리,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 중립’ 등 다른 국가적 과제들도 부처 간 통계 칸막이에 막혀 있다.
관련 부처들이 머리를 맞대면 훨씬 품질 좋은 통계가 나올 수 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통계청과 함께 ‘중소기업 기본통계’를 개편한 결과 기존 통계에서 373만개였던 중소기업 수가 630만개로 더 자세해졌다.
◇국가통계 통합·독립 강조하는 다른 나라들
프랑스는 공공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4년 총리실 산하에 데이터관리총괄책임자(CDO) 직을 신설해 부처별로 산재된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핀란드도 관련 법률들을 개정해서 소득·교육·건강·지방정부재정 등에 관한 공공 통계를 정부 부처들이 공유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영국은 의회, 아일랜드는 국무총리 산하에 중앙 통계 기관을 운영 중이다.
전문가들은 “연금개혁, 인구절벽, 고용·물가 등 경제적·사회적으로 얽힌 복잡한 문제를 개별 부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부처 간 연계되고 상호 검증된 통계 데이터로 풀어야만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준형 고려대 교수는 “요즘은 정책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립하는 시대가 됐다”며 “각 부처가 통계를 독립적으로 관리하면 빅데이터 축적·활용이 안 되므로 이를 중앙으로 모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통계 활용도 높여야 가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 공약을 내걸었다. 방대한 국가 통계를 공유·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차원이다.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장벽을 허물고 개방하면, 민간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정부 데이터 개방, 원스톱 행정 업무 시스템 구축, 국민 개개인 맞춤형 서비스, 산업 성장에 활용 등이 포함된다.
이를 위해 별도 팀(TF)을 구성해 국정 운영 과정의 의사 결정에 데이터·과학화 기반 시스템 도입을 위한 정책을 발굴 중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새 정부에서 구축하려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핵심은 정확한 통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책”이라며 “국가 통계 체계를 근본적으로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