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놀란 표정으로 시세판을 올려다보고 있다. 뉴욕 증시는 전날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 결정에 뒤늦게 반응하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3%대 하락했고, 나스닥지수는 4.99% 폭락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5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가 폭락한 것은 경제 회복을 해치지 않으면서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빠르게 낮출 수 있다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연착륙’ 발언이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전날 연준이 22년 만에 단행한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에 “예상했던 일”이라고 안도했지만, 연내 2번 더 ‘빅스텝’에 나서겠다는 파월의 속도전에 “너무 지나치다”는 평가를 내린 셈이다.

연착륙을 향한 파월의 계기판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1분기 미국 성장률은 -1.4%(연율)로 코로나 사태 초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3월 미국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Recession)를 피할 확률은 33%뿐”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약한 침체와 심한 침체가 각각 33% 확률이라고 예견했다.

◇현실로 다가온 ‘R’의 공포

작년 말부터 시장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지만 연준의 움직임은 느렸다. 지난 3월에야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대응에 나섰다. 급해진 연준은 지난 4일 ‘빅스텝’까지 동원했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늦었다고 본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 2년간 연준이 푼 돈은 약 4조8000억 달러(약 6000조원)에 달한다. 이렇게 풀린 돈의 힘으로 주가, 집값 등 자산 가격이 치솟았는데 뒤늦게 물가 상승세를 꺾겠다고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면서 오히려 경기 침체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실업률을 봤을 때 향후 24개월 안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경제학자들은 두 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 리세션(경기 침체)이라 진단하지만, 미국 경기 판단 기관인 전미경제조사국(NBER)은 고용과 국내총생산(GDP), 임금, 산업생산 등 거시 경제 지표를 종합적으로 보고 경제 전반에 걸쳐 몇 개월 이상 활동이 현저히 감소하면 침체를 선언한다.

일단 무역과 성장률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미국 1분기 경제성장률은 예상하지 못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5일 노동부는 1분기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이 전 분기 대비 7.5%(연율) 하락, 75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임금은 올랐지만, 생산 활동이 그에 걸맞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13년 만에 최고치인 5.27%를 기록, 이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CNN은 미국 경제가 1980년대 초반 겪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로 휘청였던 경제가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다시 침체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다.

◇시장은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시장은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약세론자인 모건스탠리 마이크 윌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달부터 “(현재 4100 선인) S&P500 지수가 4000 선을 훨씬 밑돌게 된다”며 하락장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주식과 채권 비율을 줄이고, 원자재와 현금 등으로 다변화해 변동성이 커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11일(현지 시각) 발표되는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로 쏠린다. 1년 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3월과 마찬가지로 8% 이상 오른 것으로 나오겠지만,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은 전달 대비로는 꺾이기 시작하는 징후가 나타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물가가 꺾이는데도 연준이 기준 금리 인상 속도를 계속 높인다면 경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은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지금은 연준의 금리 인상만으론 인플레를 잡을 수 없다는 비관론도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값 상승, 코로나로 인한 중국 물류 차질 등은 금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 요인이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냉전 시대가 다시 왔다”면서 “이런 상태가 수년간 지속될 수 있고, 앞으로 에너지와 곡물, 상품 시장이 커다란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