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41년 만에 최고치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높이고, 그에 따라 달러 가치가 치솟는 강(强)달러 현상이 발생해 글로벌 금융 시장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주 통상적인 금리 인상 폭의 2배인 ‘빅스텝(0.5%포인트 인상)’ 카드를 22년 만에 실행에 옮겼다. 한국 경제는 대외 개방 수준이 높기 때문에 환율이 급등할 경우 금융 시장 변동이 커지고 수입 물가가 올라 실물 경제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환율 1300원선 깨질 수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 심리가 커져 강한 달러 매수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 주요 인사들은 이달에 이어 6월과 7월까지 ‘3연속 빅스텝’을 밟아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내며 공격적인 통화 긴축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이례적인 금리 인상이 석 달 연속 이어지면 신흥국들은 강달러 펀치를 맞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당분간 원화 가치는 추가로 하락(환율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선호 경향이 워낙 강해 달러당 1300원 선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단기적인 1차 저지선으로 1310원 선에서 막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자본 유출의 초기 정황으로 볼 수 있는 상황도 벌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외국인 주식 투자금이 순유출되기 시작해 점점 규모가 커지더니 4월에는 42억60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한 달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외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약 5조4900억원에 달한 것이다.
게다가 올 들어 국제적인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쌓이는 것도 원화 가치를 낮추며 대외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올해 들어 5월 10일까지 무역수지는 98억6000만달러(약 12조7200억원) 적자다. 작년 같은 기간에 79억2400만달러(약 10조2200억원) 흑자였던 것과 분명하게 대비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작년과 올해 초에 생산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단순히 돈만 뿌리는 정책이 이어졌다”며 “그 결과 체질 개선은 없고 물가만 올라 위기 대비가 허술해졌다”고 했다.
◇금리 인상 딜레마로 환율 방어 쉽지 않아
한미 간 금리 역전에 의한 자본 유출 위험을 안고 있는 것도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현재 기준금리는 미국이 0.75~1%이고 한국이 1.5%다. 한은이 두 번 연속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더라도 미국이 ‘빅 스텝’을 두 번 더 밟으면 실질적으로 금리가 같은 수준이 된다.
한은은 자본 유출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고민이 크다.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 침체와 고용 둔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1862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대담한 통화정책을 구사하지 못하게 막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대출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연간 20조원 가까이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가구가 양산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우리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금융시장 불안의 원인이 대외 변수라는 점에서 대응 전략에 한계가 있어 정부 당국자들이 고민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내 경기와 물가 상황이 다소 악화되더라도 무역수지를 회복하고 환율을 방어해 대외 균형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적절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추 부총리, 이창용 한은 총재, 다수의 민간 전문가와 함께 ‘거시 금융 상황 점검 회의’를 열어 경제 충격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