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어린이용 AI(인공지능) 기획 업무를 맡던 이다영(30)씨는 지난주 퇴사하고 ‘필로토’를 창업했다. 1년 6개월간 삼성전자 사내 벤처에서 준비 단계를 거쳤다. 필로토는 어린이가 스마트폰을 쓸 때 보호자가 미리 설정한 사용 시간이 지나면 화면을 끄라고 유도하는 앱 서비스를 운영한다. 캐릭터가 등장해 “이제, 잘 시간이야”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이씨는 24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열린 ‘디데이’ 본선에 출전해 필로토의 사업 모델을 설명했다. 디데이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에서 매달 ‘오디션’ 방식으로 열리는 스타트업 데뷔 무대이다. 창업계에서는 스타트업 등용문으로 여긴다. 우승한 스타트업은 최대 3억원 투자 기회가 주어지고, 디캠프에 입주할 수 있으며, 경영 컨설팅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디캠프는 설립 당시 19개 금융기관이 은행권 사회공헌활동 일환으로 약정한 5000억원과, 2018년 은행권일자리펀드 조성 때 약정한 3450억원을 합친 총 8450억원 재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지원 기관이다.

24일 서울 강남구 은행권청년창업지원재단에서 열린 스타트업 데뷔 무대 ‘디데이’에 출전한 젊은 창업자들과, 선배 창업자(이랑혁·박형진 대표)가 함께 웃고 있다. 왼쪽부터 버티카 도은욱, 남도마켓 양승우, 오늘의웹툰 진수글, 필로토 이다영, 구루미 이랑혁, DIO 황현태, 콥틱 박형진, 봄봄 이정열 대표. /김지호 기자

이날 전국 소매 상인과 남대문 도매시장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남도마켓’, 유튜브 쇼핑 영상에 등장하는 패션 정보를 앱으로 제공하는 ‘봄봄’, 웹툰 제작자를 위한 구독자 반응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오늘의웹툰’, 빅테크 출신 시니어 개발자나 마케터 채용 플랫폼을 운영하는 ‘DIO’ 등 신생 스타트업이 참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를 퇴사하고 2021년 말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을 돕는 금융 서비스를 운영하는 ‘버티카’ 대표 도은욱(32)씨는 “금융권에서 더 많은 스폰서가 필요해 출전하게 됐다”고 했다.

이창윤 디캠프 직접투자팀장은 “10년 전만 해도 쿠팡이나 티몬 등 소셜커머스 중심의 스타트업 창업이 이뤄졌다면 지금은 AI 기반 사업이 대세”라며 “공룡 스타트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시장을 개척하는 젊은 창업자가 많아졌다”고 했다.

이날은 디캠프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함께 열렸다. 지금은 유니콘 기업이 된 배달의민족, 토스, 당근마켓, 직방, 야놀자, 오늘의집 같은 스타트업도 한때 직간접적으로 디캠프의 지원을 받았다.

디캠프가 10년간 창업 지원 사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분석했더니, 28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 창출, 약 11만명의 고용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 분석을 맡은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한국벤처산업 총 투자 금액의 연평균 성장률이 14%인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10년간 재단이 68조70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가치를 낳고, 25만여 명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캠프의 지원을 받았던 선배 창업가들도 행사에 참석했다. 교육용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을 운영하는 ‘구루미’ 이랑혁(47) 대표는 “디캠프에 입주한 후 5000명이던 이용자가 250만명까지 늘어났다”고 했다. 3D 프린팅 안경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올 초 열린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은 ‘콥틱’의 박형진(48)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이나 조직 관리 멘토링 등 지원이 특히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