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오는 7월이면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준이 이번 달에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선택하고, 7월에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을 밟거나 적어도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을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금리 역전이 빨라도 연말쯤이나 발생할 것으로 봤는데, 시기가 한층 앞으로 당겨진 것이다.
연준이 가파른 통화 긴축을 이어가면 한국은행이 ‘금리 추격전’을 벌이더라도 연준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통 우리나라의 금리가 더 높아야 국내에 들어온 투자금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로 이탈할 확률이 줄어든다. 한은은 금리가 뒤집힌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 유출이 나타날 확률이 낮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불안감이 고조되는 시기라 안심할 수 없다.
◇7월이면 한·미 간 금리 역전 확률 높아
연준은 한국 시각으로 16일 새벽 6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치고 새로운 기준금리를 발표한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기존 연 0.75~1%에서 1.5~1.75%로 끌어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선택할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5월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8.6%)이 예상치보다 높게 나오면서 기존에 예고한 ‘빅 스텝’으로는 물가 상승세를 잠재우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장 지표로 연준의 금리 변화 확률을 예측하는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은 ‘자이언트 스텝’ 확률을 99.8%로 내다볼 정도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경우 곧바로 미국 금리는 한은 기준금리(연 1.75%)와 사실상 같은 수위가 된다. 한은은 6월에 금통위를 열지 않기 때문에 7월 13일로 예정된 다음 금통위까지 미국과의 ‘금리 동률’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한은이 7월 13일 금리를 2%로 올리거나 ‘빅 스텝’을 밟아 2.25%까지 끌어올린다고 하더라도 2주도 지나지 않아 금리 역전이 나타날 확률이 크다. 연준이 7월 26~27일 열리는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또다시 밟아 연 2.25~2.5%까지 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페드워치툴’은 7월에 연준이 또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확률을 90.6%로 예측하고 있다.
한은은 연준만큼 과감한 속도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 한은은 1950년 설립 이후 ‘빅 스텝’조차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가계 부채(작년 말 기준 1859조원)를 안고 있다는 점이 미국과 다르다. 한은이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 가계에 충격을 가져오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타격이 클 수 있다.
◇“대외 여건 나빠 금리 역전 위험하다”
한·미 간 금리 역전에 대해 한은 관계자들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괜찮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설명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말 “자본 유출이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상황을 볼 때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한·미 간 금리 역전이 3차례 있었지만 두드러진 해외 자본의 이탈은 없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초부터 약 2년간 금리가 역전돼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우려가 많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봉쇄령, 글로벌 원자재 공급 대란 등 대외 약재가 겹쳐 있고,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 우려로 국내외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이 커진 상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외 악재가 쌓여 있고 북한의 위협과 노동계 임금 투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한·미 간 금리 역전까지 벌어지면 달러 수요가 급격히 늘어 자본 유출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게다가 환율이 2018~2019년 금리 역전기에는 달러당 1100원 안팎으로 안정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1290.5원(15일 종가)으로 1300원 턱밑에 도달해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불안 심리가 높아져 있어서 ‘남이 나가면 나도 나간다’는 식의 급작스러운 해외 투자금 이탈이 벌어질 확률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다른 신흥국에서 선진국 자금 이탈이 시작될 때 우리나라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아 자본 유출이 나타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