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과 긴축 쇼크로 증시가 폭락하자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 연준 발표를 라이브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난 6월 16일 새벽 투자 관련 여러 커뮤니티는 글 리젠(글이 새로 생성되는 것)이 활발히 이뤄졌다. 오전 3시(한국시각)에 있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발표를 기다리느라 잠 못 자는 이들이었다. 연준이 어떤 스텝을 밟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결정되는 상황. 이날 연준은 0.7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넘어서는 ‘자이언트스텝’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동안 연준이 선을 그어왔던 0.75%포인트 금리 인상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국내 언론들은 속보를 쏟아냈다.

애초 월가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지난 5월에 이어 6월에도 0.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 발표 뒤 “올해 두 번 정도 0.5%포인트씩 인상해야 한다는 인식이 위원회에 넓게 퍼져 있다”고 밝혔던 발언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자이언트스텝’에 관한 얘기가 소수 의견으로 있었지만 파월 의장은 “0.75%포인트 금리 인상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남은 5번의 FOMC(6·7·9·11·12월) 가운데 6월이나 7월쯤에 추가 빅스텝 가능성이 점쳐졌던 이유다.

일주일 새 벌어진 자산들의 폭락

상황이 급변한 건 지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뒤부터다. 미국 노동부는 6월 10일, 5월 CPI가 전년 동기보다 8.6% 인상됐다고 발표했다. 시장의 예상과 달리 3월에 기록한 8.5%를 뛰어넘었고 1981년 12월(8.9%)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렇게 인플레이션 정점론은 붕괴됐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물가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반응이 강하게 튀어나왔다. 인플레이션 경고에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연준 책임을 묻는 비판도 거셌다. CPI 발표 이후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연준의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답하는 여론이 3.6%에서 40.3%로 크게 높아졌다.

0.75%포인트 인상의 가능성을 먼저 제기한 곳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이었다. 주가가 폭락하며 블랙먼데이로 불렸던 6월 13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인플레이션 수치가 시장의 예상보다 큰 금리인상을 고려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스의 보고서를 인용했지만 이 기사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뭔가 확실한 소스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보도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자이언트스텝이 이루어졌다.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이 유령처럼 전 세계를 떠도는 동안 국장도 미장도 코인도 최근 일주일 새 붕괴했다. 이를 지켜보던 수많은 투자자들의 멘탈도 함께 무너졌다. 지난 6월 14일, 코스피는 미국 물가 충격의 여파로 전날에 이어 또다시 하락하며 25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코스피 2500선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됐는데 그게 무너진 거다. 코로나 이후 ‘불장’을 달렸던 코스피는 이제 1년7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해외라고 다르지 않다. 블랙먼데이 폭락으로는 모자란 듯 다음날인 6월 14일에도 뉴욕 증시는 대형주 중심의 S&P500 지수에 포함된 500개 전 종목이 모두 하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3만6000선을 기록했던 다우존스지수도 3만 선을 간신히 턱걸이하며 연초 대비 20%나 떨어지며 약세장을 증명했다. 코인도 마찬가지. 6월 8일 3만 달러 선에 걸쳐 있던 비트코인은 한때 6월 15일 2만 달러 선까지 근접하며 폭락했는데 일주일 동안 30%나 하락했다.

투자할 만한 모든 자산들이 떨어지고 곡소리가 나는 가운데, 급락 뒤 반등을 기대하는 심리적 바람조차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충격 후 급반등’은 투자시장의 공식처럼 다뤄지지만 글로벌 유동성이 수축되면서 모든 게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단 금리인상에 취약한 레버리지(빚) 투자가 자산 시장에서 먼저 떨어져 나가고 있다. ‘불장’일 때야 레버리지는 유동성을 담보하지만 냉각기에는 손실을 키우는 주범이다. 금리가 급등하는 자이언트스텝이 이뤄진 뒤에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된다.

인플레이션이 소멸할 거란 희망이 없는 한 유동성은 앞으로도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고 자산 가격이 더 추락할 여지가 있다. 한 자산이 하락하면서 연관성이 크지 않은 다른 자산의 매도를 자극하고, 이런 영향으로 다시 원래의 자산이 또다시 하락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지금 우린 경험하고 있다.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제전문가 68% “2023년 미국 경기침체”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지만 대중은 인플레이션으로 파생된 고통과 싸워야 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고통의 긴 터널 속에서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느냐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경기침체가 내년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집해 공개했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우리가 맞닥뜨린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는 이제 시작 단계다.

결국 핵심은 미국 경제의 향방이다. FT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과 함께 경제학자 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전문가 중 68%는 내년인 2023년 미국 경기가 침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자의 38%는 경기침체 구간을 공식 판단하는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내년 상반기 중에 공식적으로 ‘경기침체’를 선언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통 경기침체는 실질GDP의 증가율이 2분기 연속 감소할 경우를 뜻하는데, NBER은 이런 사전적 정의를 떠나 전체적인 경제 사이클을 고려할 때 상당기간 위축되어 있는 상태를 경기침체라고 본다. 2024년에 경기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 경제학자도 30%나 됐지만 올해 경기침체가 시작될 거라고 보는 학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경기침체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곧 다가온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결과는 그동안의 연준 입장과는 배치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6월 FOMC를 앞두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경기침체를 불러오는 암울한 계산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원래 연준은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봤다. 고통을 줄이면서도 수요를 억제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빅스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건 그런 자신감의 발로였지만 그릇된 판단이었고 자이언트스텝을 내디뎠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5월 셋째 주 보고서에서 “연준이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으며 연준은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과 맞닥뜨릴 수 있다”고 했다. ‘홉슨의 선택’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둘 중 어느 하나를 무조건 선택해야만 하는,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데 여기서의 선택지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완만한 경기침체를 불러오느냐, 아니면 큰 규모의 급속한 경기침체를 불러오느냐다. 뭘 선택해도 경기침체라는 R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시장 좇지 못하는 정부와 중앙은행

이런 공포는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딘 크로쇼어 리치먼드대 교수(경제학)는 “연준이 너무 지체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인지하고 긴축을 결정하는 속도가 느렸다는 얘기다. 연준이나 각국 정부는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는데 매번 물가상승률보다 뒤처져 정책 결정을 내렸던 게 문제였다. 정책에 대한 불신이 시장의 변동성을 키워왔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연준이 처음으로 금리를 올린 때는 올해 3월이었다. 크로쇼어 교수는 “이런 지체 때문에 연준이 결국 5%포인트 정도까지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선 파이낸셜타임스의 조사에서는 절반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3~4%를 연준 기준금리의 최고 구간이라고 내다봤는데 그보다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자이언트스텝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고심도 커지게 됐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75%다. 연준이 이번 FOMC에서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면서 0.75~1.00%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1.50~1.75%로 올라갔다. 상단이 한국의 기준금리와 같아졌다. 7월 연준이 또 한 번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금리 역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의 높은 금리를 좇아 국내에 있는 해외 자본이 유출되면서 주식시장이 흔들릴 수 있고 환율이 치솟는 게 보통의 시나리오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추가적인 물가 상승의 압력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 맞대응하려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더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은행은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만 밟아왔다. 보폭에서 차이가 난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한국은행이 7월 빅스텝에 이어 8·10·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추가 인상해 연말 기준금리가 3.0%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의 빅스텝은 민간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라 그동안 이뤄진 적이 없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제로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매파적(통화 긴축) 발언이 적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기준금리 연속 인상에 따른 국내 경기 회복세가 아직 감내할 수준이니 인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과 미국 간의 금리 역전을 지나치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과 한국의 정책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동조하는 금리 동조화 정책을 쓸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 연구위원은 “미국보다 한국의 금리가 낮으면 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로 인해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국내 물가와 경기 여건에 맞게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게 정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문제는 성장률 저하에 대한 우려다. 우리 정부는 거시경제에 대한 뚜렷한 대응 수단을 쥔 게 없다. 게다가 최근 경제지표 등을 종합해 볼 때 올해 국내 물가는 4%대로 치솟을 거라는 예상이 많다. 이미 5월 물가상승률은 5.4%로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6월에는 그보다 더 높은 6%대를 기록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높은 물가는 가계와 기업 등에 부담을 늘린다. 게다가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당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건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 당장 가계만 놓고 봐도 그렇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연 4.05%였다. 이를 기준으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이자는 연간 3조원 정도 늘어난다. 결국 물가 상승, 그로 인한 긴축은 가계의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고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타파할 때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까딱하다간 경제마저도 타파해버리는 위험을 지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의 통제 밖 변인들

블룸버그는 연준의 빅스텝 발표 뒤 “투자전문은행 웰스파고의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불과 일주일 전에는 연착륙을 예상했지만 현재는 가벼운 경기 후퇴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낮은 상태라는 점이 경기침체가 깊어지는 걸 막아준다고 했다.

다만 그 가벼운 경기 후퇴라는 희망이 이뤄질지도 지금은 논쟁거리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은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연준의 금리 인상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존재한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인은 중앙은행을 종속 변수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한 유가와 원자잿값은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다. 팬데믹 탓에 생긴 공급망 차질도 공범이다. 중앙은행이 좌우할 수 없는 원인들이다 보니 금리라는 무기만으로는 시장을 쉽게 잠재울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연준은 금리 인상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다. 6월 16일(한국시간) 발표한 금리 전망치를 담은 점도표에 따르면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은 3.4%까지 오르고, 내년에는 3.8%까지 상승한 뒤 2024년 다시 3.4%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연준 기준금리의 상단 값이 1.75%포인트인데 그 수치만큼 올해 더 오른다는 건 빅스텝 혹은 자이언트스텝이 또 단행된다는 뜻이다. 내년에도 추가로 소폭 더 오른 뒤에야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게 연준의 얘기인데 평범한 사람들의 경제적 고통이 생각보다 길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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