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보유하던 부동산을 자식에게 증여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사후(死後) 상속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일반적으로는 상속이 낫지만 증여가 유리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잘 따져봐야 한다.
증여와 상속은 무상으로 재산을 주는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본 세율도 같다. 반면 다른 점도 많다. 먼저 증여는 특정 재산을 골라서, 또는 재산 일부만 줄 수 있다. 공동명의로 하거나 일부 지분만 이전해 줄 수도 있다. 여러 번 해도 무방하다. 이에 비해 상속은 사망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한 번만 할 수 있다.
◇공제한도는 상속이 증여보다 많아
세금을 공제해 주는 공제한도도 증여와 상속이 다르다. 증여는 10년 주기로 공제 금액을 산정한다. 배우자 6억원, 성인 자녀는 5000만원(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다.
반면 상속은 증여보다 공제 한도가 크다. ‘일괄공제(5억원)’와 ‘기초공제(2억원)+인적공제(자녀 1인당 5000만원)’ 중 큰 금액을 공제한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기초공제와 인적공제를 합한 금액이 일괄공제보다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속은 여기에 배우자공제가 더해진다. 배우자 공제는 실제 배우자가 상속받은 금액이 없거나 5억원 미만인 경우라도 최소 5억원을 공제해준다. 만약 상속 금액이 5억원 이상이면 실제 배우자가 상속받은 금액을 공제해준다. 최대 한도는 30억원이다.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를 잘 이용하면 부부가 사망할 경우 최소 15억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부 중 남편이 먼저 사망한다면 10억원(일괄공제 5억원+배우자공제 5억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이후 아내가 사망한다면 역시 일괄공제 5억원을 적용해 총 15억원 공제를 받는다는 뜻이다.
증여세는 자녀 대신 부모가 세금을 대신 낼 경우 그 금액에 대한 증여세가 또다시 부과된다. 반면 상속세는 연대납부가 가능하다.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사망하고 남은 배우자가 상속받은 재산가액 한도 내에서 자녀의 상속세를 대신 내줘도 추가로 세금이 붙지 않는다.
재산이 15억원이 넘는다면, 재산 명의자가 사망할 때 배우자가 상당 부분을 상속받은 후 자녀에게 재상속하는 방법도 있다. 상속이나 증여세는 금액이 커질수록 세율이 높다. 따라서 재산가액을 줄여 낮은 세율 구간을 적용받아 절세할 수 있는 것이다.
◇증여가 유리한 상황 3가지
증여가 유리한 상황은 어떤 경우일까. 먼저 지금은 비싸지 않은 부동산이라도 앞으로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 증여가 유리하다. 아직 자녀의 소득이 많지 않아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면 부모 명의로 취득 후 적절한 시기에 증여하는 편이 좋다. 향후 재산가액이 상승하면 당연히 세금도 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개발·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부동산은 자녀에게 미리 증여하기를 추천한다.
또 여전히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와 양도세가 높은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수년간 보유세를 부담하고 이후 상속세를 또 부담하는 쪽보다 미리 증여로 보유세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최근 부동산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기 어려운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증여가 크게 증가한 이유다. 다만 증여로 인한 취득세가 12%까지 높아지면서 절세 효과가 과거만큼 크지는 않다. 앞으로 증여에 대한 취득세 변화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임대소득이 있는 부동산도 증여가 더 나을 수 있다. 부모에게 집중된 소득을 자녀에게 분산해 소득세 부담을 낮추고, 자녀의 자금 출처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 시행되는 건강보험료 체계 개편은 소득이 있는 은퇴자의 보험료 부담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현재 직장 가입자를 유지하고 있는 자녀에게 해당 소득을 이전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자녀는 이전된 소득으로 다른 부동산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자녀가 부모의 종신보험을 들어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상속이나 증여는 부모의 의지와 자녀의 상황, 보유 재산의 종류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결정이다. 대부분 부모는 이 부동산을 증여하면 내 자녀가 잘 관리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아직은 이르다고 판단해 실제 증여가 실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이럴 때는 부동산을 모두 넘겨주기보다는 구분 등기가 되어 있다면 건물의 특정 층 또는 상가만을 넘겨줄 수 있다. 부동산이 창고라면 토지는 부모가 소유하고 건물만 넘겨주는 식이다. 또 꼬마 빌딩이라면 두 자녀에게 40%씩 이전하고 나머지 20%는 부모가 소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부모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자녀가 마음대로 부동산을 처분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상속 준비는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는 데서 시작한다. 상속세 준비에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금융 상품이 종신보험이다. 상속세 납부 시점에 현금을 마련할 수 있고, 자녀의 자금 출처가 있다면 자녀를 계약자로, 부모를 보험 대상자로 하면 사망보험금 수령 시 세금이 없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