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에서 사자성어가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장관이나 청장 등 정부 부처 기관장들의 취임사나 주요 회의 의 모두 발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는데, 요즘은 통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정부까지는 해현경장(解弦更張‧거문고의 줄을 다시 고쳐 맨다), 이청득심(以聽得心‧잘 들어서 마음을 얻는다) 같은 사자성어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연비어약(鳶飛魚躍) 같은 어려운 사자성어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시경’에 나오는 말로,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연못에서는 물고기들이 뛰논다’는 말로 만물이 세상 이치대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중용’에 나오는 사변독행(思辨篤行‧매사에 신중히 생각하고 성실하게 실행하라) 등도 “암호문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표현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사에도 나오지 않았죠. 추 부총리는 지난 3일 비상경제 장관회의 모두 발언에서도 사자성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자도 드물었습니다. ‘고(高)물가’와 ‘해외발(發) 충격’, ‘전(全) 경제팀’ 등 딱 세 번 등장합니다.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는 주말도, 휴일도 없습니다” 같은 단순 명료한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관가의 글쓰기 관행이 바뀌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세대 교체가 꼽힙니다. 장관의 대외 발언은 주로 국장이나 과장급들이 초고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한자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1970년대생인 국장, 과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경제 부처의 한 과장은 “당장 나도 들어본 적이 없는 표현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하듯 국민들한테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장관 발언 초고를 쓸 때 사자성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최근 물러난 임광현 국세청 차장은 “여러분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퇴임사를 마쳤습니다. 거창한 사자성어를 앞세우는 관가의 관행 대신 평이하지만, 명확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