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신용대출 6000만원을 받은 직장인 김모씨는 만기 연장을 위해 최근 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대출받을 때 연 2.98%였던 이자가 6.05%로 뛰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무리 금리 상승기라고 하더라도 1년 만에 대출 금리가 2배로 뛸 수 있느냐”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0일 “금리 상승기에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은행의 ‘이자 장사’를 경고하는 발언을 한 이후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섰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만 소폭 인하해 생색을 냈을 뿐 신용대출 금리는 큰 폭으로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주담대 금리는 찔끔 인하하고 신용대출은 대폭 올려… 직장인 분통
본지가 최근 한 달 사이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대출 금리를 비교해보니, 고정 금리형 주담대 금리는 연 4.33~6.19%(6월 13일)에서 4.28~6.14%(7월 13일)로 0.05%포인트가량 낮아졌다. 금융 당국의 대출 금리 인하 압박이 어느 정도 통한 것이다. 반면 같은 한 달 사이 신용대출 금리는 연 3.52~5.44%(6월 13일)에서 연 4.23~6.23%(7월 13일)로 0.7%포인트 넘게 올랐다.
은행들은 최근 금리 인상기인데도 불구하고 대출금리를 인하했다고 널리 홍보했고, 금융 당국도 간접적인 금리 인하 압박이 통했다고 내부적으로 자평해왔다. 그러나 금리가 인하된 대출 상품은 절대다수가 주담대였다.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2500만원 늘렸더니 대출금리가 연 4.18%에서 5.06%로 뛰었다”며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낮췄다는 말은 눈속임 아니냐”고 말했다.
큰 흐름으로 보더라도 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 인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를 보면, 주담대는 작년 5월 연 2.69%에서 올해 5월에는 3.9%로 1.21%포인트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 기타 대출(주로 신용대출) 금리는 연 3.69%에서 5.78%로 2%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올해 주담대 대폭 줄어 금리 인하 실효성 떨어져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를 소폭 인하한 것은 실수요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주택 거래 시장이 주춤하고 있어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주담대는 올 들어 5월까지 3조9903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작년 한 해 증가액(45조6651억원)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큰 폭으로 둔화된 것이다.
이와 달리 신용대출은 급전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용대출 금리 급등으로 애를 먹는다는 직장인들의 불만이 크다. 주담대는 금리가 고정돼 있는 경우도 제법 있지만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은 절대 다수가 변동 금리형이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금리 변화가 훨씬 크다.
한은에 따르면,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 기타 대출은 올 들어 5월까지 8조3381억원 감소했는데, 이는 은행들이 실제 쓰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대폭 줄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또 대출금리 급등을 견디지 못하고 신용대출을 갚은 사람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를 높게 올려서 기존 대출을 갚도록 유도하고,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더 높은 금리에 새로 빌려가게 만드는 상술을 쓴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은행들은 “서민 고객을 위해서는 주거 지원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금리 혜택을 주담대에 우선 적용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한 시중은행 간부는 “정부의 가계 부채 안정화도 주로 주담대에 집중돼 있고 서민 가계 안정이란 차원에서 볼 때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은 우선순위가 밀린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찔끔 인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대출금리는 더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3일 한은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 시차를 두고 시중금리에 반영될 경우 취약 계층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서민용 정책 금융 상품인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의 금리도 조만간 연 5%대에 도달할 전망이다. 이달 보금자리론 금리가 연 4.5~4.85%이기 때문에 다음 달 이후 ‘빅스텝’이 반영되면 연 5%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