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김모씨는 요즘 일본 온라인 쇼핑몰에 자주 들어가고 있다. 지난 한 달간 파운데이션과 파우더 등 화장품뿐 아니라 샌들, 티셔츠, LP 음반을 일본에서 직구(직접 구매)했다. 조카 선물로 줄 아기 용품도 샀다. 그는 “요즘 엔화 가치가 많이 내려가 1만5000~2만원쯤 하는 배송비를 감안하더라도 한국보다 훨씬 싼 경우가 많다”며 “달러 기준 150달러까지는 관세도 없어 엔화 가치가 올라가기 전에 필요한 물건을 사두려 한다”고 했다.
엔저(低)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해외 직구족들이 가격 메리트가 커진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초 100엔당 1030원대였던 환율은 지난 6월, 4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930원대까지 떨어진 뒤 지금도 970원대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일본 여행이 제한된 것도 일본 직구를 늘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강달러’ 미국 직구↓, ‘엔저’ 일본 직구↑
24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7월 신한카드 고객의 일본 직구 결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해외 직구 평균 증가율(12%)을 크게 웃돈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직구 결제는 거꾸로 16%나 줄었다. 달러당 1345원까지 환율이 급등하며 미국 직구의 가격 메리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용 금액 기준으로도 일본 직구는 8% 증가한 데 반해 미국 직구는 8% 감소했다. 환율 흐름이 해외 직구 시장의 분위기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가격이 싸 인기 있던 중국 직구는 지난 4월 코로나로 인한 주요 도시 봉쇄령으로 배송이 어려워지면서 이용 건수가 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주요국 중 일본 직구만 나 홀로 독주하는 추세다.
갑자기 일본 직구가 급증하면서 배송이 늦어지는 상황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통상 당일 출고되던 물품이 1주일 이상 지연되기도 한다. 국내 1위 해외 직구 배송대행 플랫폼인 ‘몰테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 직구 결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7% 증가했다. 최근 두 달 사이엔 20% 가까이 늘었다. 몰테일 관계자는 “최근 들어 물류량 폭증 등으로 대거 배송이 지연되고 있어 고객들의 민원이 많아졌다”고 했다.
◇주류, 골프채 등 고가품 인기
엔저 현상 속에 가장 인기를 끄는 품목은 주류였다. ‘몰테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 직구족들에게 사랑받은 베스트셀러 품목에는 이탈리아산 와인인 ‘티냐넬로 2018′과 ‘사시카이아 2018′, 스코틀랜드 위스키인 ‘글렌파클라스105′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미국산 캘러웨이 골프채와 골프 장갑 등도 주문량이 많았다. 이들 품목은 일본산이 아니다. 하지만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떨어지면서 일본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싸졌다. 예를 들어 독일산 버켄스탁 EVA샌들은 국내에선 10만원 안팎이지만, 일본 직구로는 5만4000원(5500엔)에 살 수 있다. 50% 가까운 ‘바겐세일’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 모로칸오일 헤어트리트먼트나 시세이도 샴푸 같은 일본산 헤어제품과 간장(이소마루 성게 간장, 기코만 나마소유 생간장), 닛신 컵라면 등 식품류도 꾸준히 인기다. 한 일본 직구족은 “환율 메리트도 있지만, 일본 사이트에서는 국내보다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구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구할 수 없는 색상이 일본 시장에는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본 직구족을 겨냥해 직구 사이트들은 발 빠르게 서비스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일본어를 모르거나 직구가 생소한 초보자들을 위한 구매대행 서비스도 강화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원하는 물건 사진만 올리면 담당 직원이 대신 물건을 찾아 결제까지 해줄 정도로 서비스가 편리해지다 보니 이용 고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