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적자가 5개월 연속 적자 행진인 반면 상품수지는 3개월 연속 흑자이다. 우리 무역 '체력'을 알아보는 지표들을 문답으로 풀었다. /뉴스1

8월 무역수지 적자가 통계 집계 66년 만에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최근 있었습니다. 벌써 5개월 연속 적자 행진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비슷해 보이는 경상수지는 3개월 연속 흑자입니다. 지난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상수지 흑자 폭은 1년 전과 비교해 줄긴 했지만 여전히 흑자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무역수지 적자는 커졌지만) 대외건전성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경상수지에서 연간 300억 달러 이상 흑자를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죠.

도대체 한국의 무역 ‘체력’은 어떤 상황일까요. 무역수지, 경상수지, 상품수지 등등 이 복잡한 용어들은 어떤 관계이고 무엇이 중요할까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어떤 통계에 주목해야 할까요. 볼 때마다 헷갈리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의 관계, 5문답으로 쉽게 풀었습니다.

◇1Q. 무역수지는 적자인데 경상수지는 흑자네요. 두 통계는 무엇이 같고 다른가요.

우선 ‘수지(收支)’라는 말부터 알고 갈까요. ‘수지 맞았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수지는 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이익을 뜻합니다.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수출과 수입의 차액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하지만 ‘수출’ 그리고 ‘수입’에 무엇을 넣는지가 다릅니다. 간단히 말하면 경상수지가 무역수지보다 좀 더 넓은 개념입니다.

우선 무역수지는 한 나라 상품의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수치입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 주로 공산품이었을 때 집계하기 시작한 통계라서 상품의 수출과 수입에 집중했다고 보면 됩니다.

경상수지는 상품 외에도 서비스로 벌거나 나간 돈에 대한 통계를 집계하고, 투자를 통해 한국이 벌어들인(혹은 한국에서 나간) 돈도 집어넣은 보다 포괄적인 통계입니다. ‘경상(經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경상수지는 국가간 통상적 거래에서 계속적으로 생기는 수입과 지출의 차액이라고 할 수 있죠.

경상수지는 크게 셋으로 분류됩니다. 무역수지와 비슷하게 상품 수출입을 집계한 상품수지, 여행이나 운송 수출입을 집계한 서비스 수지, 임금이나 배당·이자 흐름을 집계한 본원소득수지입니다.

경상수지는 상품의 수출입뿐 아니라 서비스로 벌거나 나간 돈, 투자로 한국이 벌어들인(혹은 한국에서 나간) 돈도 포괄하는 통계다. '서학 개미'들이 해외 주식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이 늘면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했다. /일러스트=김성규

무역수지와 비슷한 상품수지가 적자더라도 나머지 수지에서 흑자가 나면 전체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7일 발표된 7월 경상수지 통계를 보면, 상품수지는 11억8000만 달러 적자였는데 서비스수지와 본원소득수지가 각각 3억4000만 달러, 22억7000만 달러 흑자여서 전체적으로는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달 무역수지가 48억489만 달러 적자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히 보이지요.

참고로 두 통계는 집계주체가 다릅니다. 관세청이 무역수지를, 한국은행이 경상수지를 발표합니다.

◇2Q. 경상수지 중 상품수지가 무역수지와 비슷하다면서요. 그런데도 수치가 많이 다른데요?

잘 보셨습니다.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중 상품수지의 집계 기준이 달라서 생기는 일입니다. 크게 두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 또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경우처럼 한국을 거치지 않는 수출을 집계하는지 여부입니다.

무역수지는 가공·중계무역 등 한국의 ‘관세선’을 통과하지 않는 이른바 ‘무통관 수출’은 반영하지 않습니다. 반면 경상수지는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상품도 집계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스마트폰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경우, 경상수지에는 수출로 잡혀 흑자에 반영되지만 무역수지엔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나 제3국에 판매한 제품은 무역수지에서는 수출로 잡히지 않는다. 사진은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 기아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가 조립 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하는 낸드플래시도 현지에서 바로 다른 나라로 수출할 경우 무역수지에 집계되지 않습니다. 한국은행은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무통관수출이 늘면서 경상수지가 연간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무통관 수출을 포함한 이러한 중계무역 순수출이 상품수지 흑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9%에서 올해 상반기 60%까지 치솟았습니다. 올해 국내 수출입에서 구멍 난 몫을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이나 판매로 메웠다고 볼 수 있죠.

둘째, 조선업처럼 수출 혹은 수입하는 상품이 만드는 데 수 년이 걸리는 상품일 경우 이를 어느 시점에 반영하는지 여부입니다.

상품수지는 ‘소유권 이전’을, 무역수지는 ‘통관 시기’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소유권 이전은 거래 과정에서 오간 대금(선수금, 중도금, 잔금 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통관 시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물품이 국경을 넘어 나갔는지(수출) 혹은 들어왔는지(수입)가 중요하지요. 많은 상품은 이 기준에 따른 차이가 나지 않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 수출 혹은 수입하는 물품은 이에 따라 차이가 생깁니다.

대표적인 예가 선박입니다. 배는 보통 만드는 데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립니다. 무역수지는 선박 건조가 끝나고 통관 수출 신고가 이뤄져야 총선박금액을 수출로 잡지만, 상품수지는 선박 건조가 진행되는 도중 대금을 받으면 소유권이 이전됐다고 보고 수출에 반영하는 식입니다. 최근 조선업 수주 호황도 (경상수지 중) 상품수지 흑자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배가 (해외의) 구매자에게 인도되지 않았다면 무역수지엔 아직 반영이 되지 않았겠지요.

역으로 항공기처럼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물품도 주문부터 수입 시점까지 기간이 길어, 경상수지와 무역수지간 시차가 생깁니다.

선박이나 비행기처럼 상품 주문부터 인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품은 경상수지와 무역수지간 시차가 생긴다. 사진은 지난 6일 제주항에 접안해 있는 여객선 모습. /뉴스1

◇3Q. 경상수지에 있는 서비스 수지엔 어떤 것들이 들어가나요.

경상수지에서 상품수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여행·운송 등 서비스수지, 배당·임금 등을 포함한 본원소득수지, 국내 거주자와 비거주자간 무상으로 주고받는 금전거래인 이전소득수지 등 다른 요소들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상반기의 경우엔 경상수지 중 서비스 수지가 개선되면서 상품수지 흑자폭이 축소된 부분을 상쇄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강한 컨테이너 운임(운송수지)이 많이 올랐고, 해외 여행이 과거보다 줄면서(여행수지) 서비스수지의 적자 규모가 개선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비스수지는 지난해 7월 2억 8000만 달러 적자였는데, 올해 7월은 3억4000만 달러로 흑자 전환했습니다. 올해 7월 본원소득수지는 그 규모가 줄긴 했지만 22억7000만 달러 흑자를 냈고요. 7월 상품수지가 적자로 전환됐음에도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것을 보면, 상품수지 외 다른 요소들이 경상수지 흑자에 영향을 끼친 셈이죠.

◇4Q. 경상수지가 흑자면, 무역 적자 걱정을 안 해도 될까요?

정부는 무역 적자 우려에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논리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 최악인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경제의 위험 신호가 아닐 수는 없죠.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커지면 경상수지도 타격을 받습니다. 1998년부터 25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는 기조가 내년에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무역수지가 악화하면서 앞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역수지에 빨간 불이 켜진 만큼 경상수지의 변동성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시사한 것이지요. 실제로 올해 7월 경상수지에서 상품수지가 11억8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악화됐습니다.

◇5Q. 정확한 한국 무역의 ‘성적표’를 보려면, 어느 지표를 우선 봐야 할까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한쪽 지표만 보고 경제 상황을 진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 자동차·반도체·스마트폰인 만큼 이들 업황이 두 지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고려해야겠죠. 이들 품목의 해외 생산이 늘면서 무역수지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최근의 무역구조 변화를 감안한다면 단순 무역수지보다는 경상수지 중 상품수지 기준으로 실적을 판단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두 지표를 집계한 역사를 보면, 무역수지(1956년)가 경상수지(1998년)보다 40여년 앞서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 체질이 바뀌는 과정에 경상수지를 집계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무역수지에 잡히지 않던 항목들도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외환 수급 등 우리 경제 대외건전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면 재화 수출입뿐 아니라 서비스 교역, 해외투자 소득 등의 경제적 거래를 포괄하는 경상수지가 보다 유용한 지표가 됩니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있다. 무역수지는 우리 제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쓰인다.

그렇다면 무역수지는 없어도 될 지표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무역수지는 여전히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입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강(强) 달러 등으로 인해 올해 7월 상품수지가 10여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는데, 이미 그 전부터 무역수지는 적자를 이어가고 있었죠.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두 지표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양쪽 지표를 읽는다면, 한국 경제의 상황을 더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