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때 9%를 넘을 정도로 심각해진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이 지난 7월에 이어 다시 발생했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연준이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 미국 기준금리(3~3.25%)가 한국(2.5%)보다 0.75%포인트 높아졌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져 안전하면서 금리까지 높은 미국으로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 한국 자본 시장에 충격이 오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2일 이후 환율이 15원 넘게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며 1400원을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에 불안이 확산되는 중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금융감독원도 “급격한 자금 유출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하며 불안을 잠재우려 애쓰고 있다. 과거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을 때 타격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 근거다. 그런데 정말 안심해도 될까. 많은 전문가는 과거 역전기와 달리 지금은 물가·환율이 매우 높고 자본시장과 가계 부채에 ‘거품’이 커진 상황이라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진 시기는 세 차례 있었다. ‘닷컴 버블(거품)’이 커졌던 1999년 6월~2001년 2월, 연준이 과도한 부동산·주식 가격 상승에 대응하려고 금리를 빠르게 올렸던 2005년 8월~2007년 8월, 금융 위기 이후 초저금리가 장기화되며 자산 가격 거품 우려가 나온 2018년 3월~2020년 2월 등이다. 1차 때는 1.5%포인트, 2·3차 때는 1%포인트까지 벌어졌었다.
◇①환율이 너무 높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상승한 것을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는다. 1차 역전기였던 1999년 달러 환율은 평균 1131원 수준이었고, 2차 때는 955원, 3차 때인 2019년은 1166원 정도였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9월 평균 달러 환율이 1385원이고, 지난 23일엔 1409원까지 치솟았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지금은 금리 역전의 문제도 있지만 달러 강세라는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라며 “달러 표시 자산, 특히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강해 과거보다 한국 시장의 상황은 좋지 않다”고 했다.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20년 만에 최고치인 113까지 오른 상태다.
◇②24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
한국 경제가 1998년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지난 6월 6%를 넘어선 물가상승률은 높은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8년(7.5%) 이후 가장 높은 5.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1·2차 기준금리 역전기엔 물가상승률이 2%대로 안정적이었고, 3차 땐 0.4%로 매우 낮았다. 미국이 금리를 계속 올리고 환율이 더 상승하면 수입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③사상 최대 무역 적자 위기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올해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 적자를 향해 가고 있다. 연간 수백억 달러씩 흑자를 기록했던 과거 금리 역전 시기와 크게 다른 또 하나의 위험 요인이다.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292억달러에 달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면 기업이 벌어들여 한국 외환시장에 파는 달러가 줄면서 환율이 더 상승할 위험이 커진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돈이 반드시 금리만 보고 움직이지는 않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무역수지 악화까지 겹치면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④가계 빚 1869조원
가계 부채가 1869조원으로 불어나 한은이 연준을 따라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2005~2007년은 가계 부채가 600조원대에 불과했다. 한은이 금리 역전 해소를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급격하게 불어난다. 이 경우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 위험도 커진다.
◇⑤부풀어 오른 자산 버블
코로나 이후 경기 방어를 위한 막대한 ‘돈 풀기’로 자산 시장의 거품이 커진 상태라는 점도 문제다. 금리 상승으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투자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위험이 더 커졌다. 2000년 닷컴 거품 붕괴 때를 제외하고 2·3차 금리 역전기엔 연간 기준 코스피가 상승했다. 올해는 지난 23일까지 23% 하락하며 위기감을 키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등 신흥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자니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따라가지 않으려니 인플레이션을 막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