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를 둘러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유예에 반대하던 민주당이 지난 18일 “2가지 요구를 들어준다면 찬성하겠다”며 조건부 유예안을 제시하면서 양측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20일 정부가 거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의 2가지 조건은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의 기준을 종목당 1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정부안을 철회하고, 증권거래세는 현행 0.23%인 세율을 0.2%로 낮추려는 정부안보다 더 큰 폭인 0.15%로 인하하라는 것이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대주주 범위를 줄이지 말고, 증권거래세는 크게 낮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증권거래세를 0.15%로 낮추는 것은 시기상조다. 동의할 수 없다”면서 “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하고 주식양도세 과세 기준을 1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정부안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민주당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세는 내년부터 국내 상장 주식과 주식형펀드에서 벌어들인 연간 5000만원 넘는 차익에 대해 20~25%를 과세하는 것이다.
◇민주당안 수용하면, 세수 1조 이상 감소
기재부는 민주당이 요구하는 2가지 조건이 모두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증권거래세 세율을 0.15%로 낮추면 세수 감소가 너무 크고, 주식시장이 침체돼 있어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을 축소하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증권거래세를 0.23%에서 0.2%로 인하할 경우 세수가 8000억원 감소하는데, 민주당안대로 0.15%로 낮추면 총 1조9000억원이 준다. 세수가 1조1000억원 추가로 줄어든다.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예상돼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증권거래세율을 더 내려 재정을 악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인 대주주의 기준을 높이지 않을 경우 고액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 가능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8일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역대 최대인 3조903억원을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을 때도 주요 원인으로 대주주 양도소득세가 거론됐다. ‘큰손’들이 대주주 지정을 회피하기 위해 연말에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연말 주식 매도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주주 자격 요건을 높여 증시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기재부 입장이다.
◇연말까지 여야 협상 타결돼야
금융투자소득세는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협상도 연말까지가 시한일 수밖에 없다.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민의힘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지난 18일 “이제라도 민주당이 개미 투자자들의 목을 비트는 정치를 멈추고 금투세 2년 유예를 검토하기로 한 것은 민생을 위한 이성적 결정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여기에 또다시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 누더기 가짜 법안을 만든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증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1400만 개미들의 아우성을 경청해야 한다”며 “금투세는 정부안대로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유예의 조건으로 내건 2가지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여야를 떠나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제발 꾀해달라는 요청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과거 여야가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합의한 것은 금투세 도입 시기 문제와 연계된다. 하나만 떨어뜨려서 볼 수 없다”고 했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구간을 현행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리는 시도도 중단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과거 여야가 합의해 정부가 발표했던 대로 보다 많은 개미 투자자에게 도움되는 증권거래세는 0.23%에서 0.15%로 조정키로 한 것을 약속대로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증권거래세 0.15%는 내년 금투세 시행을 전제로 한 것이고, 금투세를 2년 유예하면 거래세를 0.2%로 해야 한다”며 “민주당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여야는 21일부터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에서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민주당안에 반대하는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만약 여야가 타협한다면 정부가 계속 반대를 주장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