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이미지 /pixabay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내년 보험료 인상률을 놓고 금융 당국과 보험 업계가 샅바 싸움에 들어갔다. 보험 업계는 실손보험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며 내년에도 10%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당국은 가입자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지나친 인상을 자제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작년에 10~12%, 올해는 평균 14.2%였다. 내년에도 10% 넘게 오르면 3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하게 된다.

실손보험은 손해보험사에만 2890만명이 가입돼 있고, 생명보험사까지 합치면 가입자가 약 3500만명에 달한다. 작년 한 해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는 11조6447억원에 달했다. 보험 업계와 금융 당국은 보험료 인상률 논의를 최근 시작했으며, 12월 중순 이전에 결정할 예정이다.

내년 실손보험료 인상 폭은 손해보험사 기준으로 가입자가 738만명에 달하는 3세대 상품(2017년 4월~2021년 6월 판매)의 보험료 인상률이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손보험은 한 번 출시하면 5년간 보험료율을 인상할 수 없고, 5년이 지난 다음에 한꺼번에 인상 요인을 반영한다.

◇”의료 쇼핑으로 막대한 손실”

보험사들은 과잉 진료 탓에 실손보험에서 큰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비에서 자기 부담금이 낮다는 점을 악용하는 일부 가입자가 무차별적인 ‘의료 쇼핑’에 나서면서 막대한 보험금을 지출하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의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율은 132.5%에 달했다. 보험료로 1000만원을 받을 때 보험금으로 1325만원을 지급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실은 2조8600억원에 달했다.

보험사들은 과잉 진료가 유발하는 보험금 누수 문제를 보험료를 대폭 올려 해결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평소 병원을 자주 찾지 않는 가입자들의 보험료도 크게 오르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매년 실손보험 가입자 중 약 70%가 보험금을 한 푼도 타지 않는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워낙 실손보험 손실이 크기 때문에 내년에도 10% 이상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겉으로는 “보험료는 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인상률을 최소화하려는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작년과 달리 올해는 높은 물가로 국민의 고통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작년과 재작년에 보험료를 대폭 올린 데다, 올해 손해율이 120%대로 예년보다 낮아질 것이라며 보험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대법원이 백내장 수술에 대해 일률적으로 입원 치료로 간주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보험금 지급이 줄어들었다고 당국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4세대 실손보험으로 갈아타볼까?

보험 업계에서는 첫 출시 후 5년이 된 3세대 상품의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생각이 다르다. 한 당국 관계자는 “실손보험에서는 손실을 입는다고 해도 전체적으로는 올해 보험사들의 수익이 개선돼 막대한 수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3세대 보험료를 크게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과 보험 업계는 1~3세대 실손보험을 작년 7월부터 판매하고 있는 4세대 상품으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4세대 상품은 비급여 치료에 대해 자동차보험처럼 보험금을 많이 받아가면 보험료가 할증되고, 병원에 가지 않아 보험금을 받지 않으면 보험료가 할인되는 방식이다.

4세대는 보장 범위가 1~3세대보다 좁고 자기 부담금 비율도 다소 높지만, 보험료가 월 2~3만원 가량이라 10만원 안팎인 1~3세대보다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다.

보험사들은 1~3세대 가입자가 올해 연말까지 4세대로 바꾸면 1년치 보험료의 절반을 깎아주는 혜택을 주고 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1~3세대 가입자가 4세대로 갈아타면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건강 상태, 가족력, 병원을 찾는 빈도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