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저축은행 경영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 당국이 잠재적인 부실 가능성이 있는 저축은행들을 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집중적인 위험 관리에 들어갔다.
복수의 금융 당국 관계자들은 12일 “일부 중소형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건전성이 악화된 곳들을 관리 대상 리스트에 올려 놓고 자금 여력이 나빠지더라도 버틸 수 있는지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이 낮거나 부실채권이 많아 건전성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온 저축은행들을 관리 대상으로 정해놓았으며, 이런 저축은행의 대주주를 불러 자본을 확충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처럼 연쇄적인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악화를 이겨내지 못하는 저축은행들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서울 시내 저축은행 78% 1년 사이 BIS 비율 낮아져
저축은행들의 경영 지표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본지가 서울 시내 23개 저축은행의 경영 공시를 전수조사해보니 전체의 78%에 해당하는 18곳이 작년 3분기와 비교해 올해 3분기에 BIS 비율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3개 저축은행의 평균 BIS 비율은 작년 3분기에는 15.45%였지만 올해 3분기는 14.29%로 하락했다. 아직은 금융 당국의 BIS 비율 권고치(8% 이상)를 충족하고 있지만 1년 사이 1%포인트 넘게 하락했다는 점을 금융 당국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서울의 23개 저축은행의 부실채권(연체 3개월 이상인 채권) 비율은 작년 3분기에는 평균 3.2%였지만 올해 3분기는 3.75%로 높아졌다. 특히 자산 규모 업계 2위인 OK저축은행(7.98%), 4위 웰컴저축은행(5.1%)을 포함해 5사가 부실채권 비율이 5%를 넘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아직까지 지표상으로 양호하더라도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 몇 곳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부실 저축은행들이 여러 곳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부실채권 3조7798억원
코로나 사태를 전후한 저금리 시절 저축은행들은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리며 덩치를 키웠다. 금감원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전체 대출은 2019년 말에는 65조504억원이었지만 올해 6월 말 기준으로는 114조5411억원으로 2년 반 사이에 76% 급증했다. 금감원은 6월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 전체 대출의 3.3%를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으로 분류했는데, 액수로는 3조7798억원에 달한다.
금리 급등기를 맞아 저축은행들의 수익성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예금 금리가 올라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했지만, 법정 최고금리(연 20%)에 막혀 대출 금리를 높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의 1년짜리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지난 10월 연 5.22%로, 1년 전(연 2.36%)과 비교해 2배가 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13.58%에서 13.54%로 오히려 소폭 떨어졌다. 서울 시내 23개 저축은행의 올해 3분기 평균 순이익은 117억원으로 작년 3분기(140억원)와 비교해 16.4% 줄었다.
◇예금자 보호 한도 21년째 5000만원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로 불안해하는 예금 고객들에 대해 “예금자 보호 한도인 5000만원까지는 전액 보호되므로 지나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2001년부터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년이 흐르는 사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배로 늘었지만 예금자 보호 한도는 그대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한도를 대폭 높인 미국·유럽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낮다. 미국은 25만달러(약 3억27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해준다. 일본은 1000만엔(약 9550만원), 독일은 10만유로(약 1억3700만원)다.
☞BIS 비율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줄인 말이다. 은행의 자기자본을 대출·지급보증·투자금 같은 위험 자산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저축은행의 경우 자산 1조원 이상이면 8% 이상, 1조원 미만이면 7% 이상의 BIS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