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8년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서 25%로 높인 뒤 외국인의 설비투자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게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설비투자는 외국 자본이 국내에 공장을 신설하거나 생산 설비를 확장하는 투자를 뜻한다. 기업 인수·합병 투자와 달리 한번 투자하면 쉽게 처분하기 어려워 투자 환경이 좋은 국가를 선택하게 된다. 투자 유치 조건 등과 함께 법인세율 등 세금 부담이 낮은 나라로 몰리게 된다.
13일 본지가 입수한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8년 이후 4년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설비투자는 연평균 51억7800만달러다. 그 이전 4년(2014~2017년·83억6000만달러)과 비교하면 연평균 31억8200만달러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작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를 넘고, 한국보다 법인세 최고 세율(지방세 포함 27.5% 기준)이 낮은 17국의 연평균 외국인 설비투자 규모는 27억5700만달러 증가했다. 외국인 설비투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스페인은 평균 128억9200만달러였고, 캐나다(101억8000만달러), 미국(85억2900만달러), 프랑스(47억9300만달러) 등의 순이었다. 핀란드,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등 3국은 감소했지만, 1억~2억달러 규모에 그쳤다.
외국인 투자가 줄면 고용 창출과 기술 이전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없어 국가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법인세 인상은 막대한 외국인 투자를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와 최저임금 인상, 강성 노조 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법인세 인상의 후폭풍이 더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법인세 낮춘 이명박 정부 땐 외국인 투자 늘어
이명박 정부 시절과 비교해보면 이런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2008년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 기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009~2011년 외국인 설비투자는 130% 가까이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의 법인세 최고 세율 인상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대상국 리스트에서 한국을 후순위로 밀어낸 셈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주 52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기업 환경도 최악인데 법인세 최고세율까지 높인 결과 국내에 투자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며 “이대로면 한국은 투자 기피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말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크게 낮췄다. 스페인은 2016년 법인세 최고 세율을 28%에서 25%로 내렸고, 프랑스는 2019년 33.3%에서 31%로 내린 데 이어 올해 들어 25%까지 인하하는 등 감세를 통한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한국만 문재인 정부 시절 법인세 인상이라는 역주행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중국 기업 유치에 걸림돌
높은 법인세는 글로벌 기업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25%로 OECD 평균인 21.2%보다 4%포인트 가까이 높고,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높다. 홍콩(16.5%)·싱가포르(17%)·대만(20%) 등 경쟁국보다 크게 높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법인세 인하 관련 자료를 내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최근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는 경쟁국보다 높고 복잡한 법인세율 체계로 인해 기업 유치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했다.
◇OECD “법인세 인상은 경기 침체 요인”
기업들은 성장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합병으로 몸집을 키워야 하지만, 수익 상승에 따른 높은 법인세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 합병은 2017년 138개에서 2021년 125개로 감소한 반면, 기업 분할은 같은 기간 47개에서 57개로 오히려 증가했다. 기재부는 “세금이 늘어나 투자를 포기하거나 회사를 쪼개려 한 결과”라고 했다. OECD는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 최고 세율을 인상한 2018년 한 보고서에서 “법인세 인상은 경기 침체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