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을 전망할 때 많은 사람이 합리적 계산보다는 종교적 믿음에 근거합니다. 하지만 집값의 적정한 수준을 객관적·합리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면 이는 미신에 가깝습니다.”
배문성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크레딧애널리스트(채권 분석 연구원)는 한국의 많은 부동산 전문가와 달리 금리의 시각으로 부동산 시장을 분석한 금융인이다. 2022년 10월 나온 책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은 부동산 시장의 급락 원인을 정교하게 파헤친 책으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의 금리 급등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지난 4일 만난 그는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가 가격 반등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그토록 많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결과는 가격 급등이었죠. 정부가 급등을 못 잡았는데 급락은 잡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욕망만으로 부동산 가격 산정 불가”
배 연구원은 한국의 많은 투자자가 부동산 가치를 ‘욕망’과 ‘희소성’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았다. “’강남 집값은 왜 오르지’라는 질문에 ‘모두가 살고 싶은데 희귀하니까’라고 답하는 식이죠. ‘특정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의 크기는 합리적 측정이 불가능한데 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결과 무조건 오른다는 맹신이 생긴 셈입니다.”
-살고 싶으면 가격이 당연히 올라야 하지 않습니까.
“희소성이나 욕망만 내세우면 적정가가 얼마인지는 누구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무조건 앞으로 쭉 오르는 거야. 모두가 사고 싶어하니까’라는 설명은 합리적이지가 않습니다. 주식을 하건, 채권을 하건 투자자는 뭔가 밸류에이션(적정가 산정)이라는 것을 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산 가격의 적정 범위는 얼마이고, 이 자산이 왜 오르고 내리며 얼마까지 오를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욕망과 희소성만을 근거로 적정가를 계산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의 적정가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요.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주요 도시의 부동산 적정가는 보통 임대 수익률과 시장 금리로 산출됩니다. 간단히는 월세와 금리죠. 집값은 월세의 몇 배, 월세 수익률은 집값의 몇 %라는 식으로 계산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집값이 월세의 30년 치라고 한다면, 집주인은 집을 소유하고 연간 약 3.3%(30분의 1)에 해당하는 이자를 받는 셈이 됩니다. 수익률 3.3%를 유지하려면 월세가 비싸져야 집값도 오를 수가 있겠죠. 지난해 이후처럼 기준금리가 급격히 오르면 요구 수익률(투자를 유인할 만한 최소한의 수익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월세가 오르지 않는다면 집값은 하락하게 됩니다.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죠.”
-한국에는 전세라는 특수한 제도가 있어서 좀 다르지 않나요.
“전세가 있기 때문에 집의 가치를 다른 나라와 좀 다르게 계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전세 보증금+갭(집값과 전세 보증금의 차이)’을 집값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는 현재의 가치, 즉 지금 실거주를 할 때의 가치라고 할 수 있고 갭은 미래의 가치인 셈인데 이 ‘미래의 가치’가 얼마가 적정하냐는 답을 내기가 어려운 영역입니다.”
-한국의 월세는 집값만큼 큰 폭으로 오르내리지 않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국토교통부가 한국의 전·월세 실거래가를 제대로 취합하고 공시한 2011년부터 월세 추이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월세가 거의 변화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대표적인 대단지 아파트로 지난 몇 년 가격이 급등한 도곡동 렉슬(34평형)의 경우 집값이 12억원에서 28억원으로 오른 2011~2020년간 월세(보증금 1억원 기준)는 300만원 정도로 크게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국의 부동산이 너무 특수해서가 아니라, 그 시기에 기준금리가 연 3.25%에서 0.5%로 하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금리가 내릴 때 월세 대비 집값이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책의 부제가 ‘마침내 찾아온 붕괴의 시간’인데요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리라고 예상하시는 건가요.
“위의 예와 정반대의 상황, 즉 금리가 지금처럼 높아지게 되면 요구 수익률이 올라가겠지요. 위와 반대로 월세가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집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텼더니 반등? 2020년과 지금은 다르다”
-부동산을 거래하는 일반인들이 채권 전문가처럼 금리나 적정가 등을 철저히 계산하고 행동하진 않을 텐데요.
“물론 일반인이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부동산 거래를 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과거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시장은 월세 가치와 집값, 그리고 금리를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포의 래미안 퍼스티지와 마포의 래미안 푸르지오를 보면, 반포의 월세는 항상 마포의 2배를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집값도 정확히 2배를 쫓아가고요. 남의 아파트 월세가 얼마인지를 다 조사해서 매매하지는 않을 텐데, 월세와 집값의 흐름은 놀랍게도 큰 시차 없이 비례해서 움직입니다.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마치 채권의 신용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정해지듯이 부동산 가격도 합리적으로 형성해 나간 것이지요.”
-채권 시장과의 차이가 있다면요.
“개인과 기관의 차이는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가격이 오를 때는 정말 빠르게 금리와 월세의 변화가 집값에 반영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하락하는 시기엔 좀 다릅니다. 채권 시장의 하락기에 기관은 어쩔 수 없이 손절매(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 보고 파는 일)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개인들은 하락기에 이 손절매를 잘하지 못합니다. ‘빨리 이 가격에라도 팔아야지’가 아니라 ‘버티고 보자’인 경우가 많죠. 지난 2019년 금리가 다소 오를 때가 대표적인데, 당시 버텼던 분들은 우연히 2020년 코로나가 오고 금리가 다시 내려가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학습효과가 아직 남아있겠죠.”
-다시 그런 반등이 오지 않을까요.
“당시 (가격 하락을) 버텨내야 했던 기간은 2~3분기 정도였지만 지금은 단기간에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코로나 혹은 금융위기처럼, 금리를 단숨에 크게 떨어뜨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또 다른 충격이자 악재가 될 겁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금 수준의 높은 금리가 최소한 올해까지는 지속된다고 전망합니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면 그만큼 이자 부담이 클 텐데요, 만약 버티고 버티다가 한꺼번에 (부동산 매도) 물량이 나온다면 가격이 언더슈팅(과도한 하락)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 중 하나죠.”
배 연구원은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 하락장을 버틸 수 있고, 집값이 좀 더 떨어져도 큰 스트레스 받지 않을 자산가들이 5년 정도 앞을 보고 부동산을 사들여 하락의 충격을 줄이는 것일 듯하다”라고 했다. “채권 시장 참여자는 비관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투자한 채권이 하나라도 잘못되면 큰일 나기 때문이죠. 반면 부동산 사업자는 한두 개라도 잘되면 큰 이익이 나기에 긍정적인 편입니다. 자산의 대부분이 집 한 채에 쏠려 있는 많은 가계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불안한 시기에 부동산 사업자의 과도한 긍정보다는 채권 전문가의 과도한 조심스러움에 좀 더 귀를 기울여도 좋지 않을까요.”
※이 인터뷰는 배문성 연구원의 개인 의견이며 회사(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