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의 시설 투자액은 약 54조원으로, 대만 TSMC의 연간 투자액(약 45조원)보다 9조원가량 많았다. 하지만 파운드리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 30조원을 투자했고, 파운드리에는 15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운드리 한 분야에만 고스란히 45조원을 쏟아부은 TSMC의 3분의 1 수준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삼성의 3배가 넘는데, 투자는 3분의 1을 하면서 따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라인. /삼성전자

◇'올라운드 플레이어’ 삼성의 한계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 기업을 넘어서 스마트폰·TV·가전을 망라한 종합 전자 기업이다. 삼성은 그동안 모바일·TV와 같은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메모리 반도체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해왔다. 반면 파운드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과감한 선제적 투자를 통해 TSMC를 따라잡기 힘든 구조였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파운드리에 약 4조원(34억 달러·추정치)을 투자한 반면, TSMC는 삼성전자의 3배 수준인 13조원(104억6000만달러)을 쏟아부었다. 삼성전자 전 사장 A씨는 “삼성전자도 2000년대 중반쯤부터 파운드리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투자 우선순위에서 항상 메모리에 밀렸다”고 말했다. 2017년 이후 파운드리 시장이 매년 10%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삼성전자는 선제 투자를 통한 대박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3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5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하만 레디케어'를 체험해보고 있다. 하만 레디케어는 카메라, 레이더 등의 센서와 머신 러닝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인지 수준을 측정하고 상태 변화를 파악해 최상의 운전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삼성전자와 하만의 전장사업 관련 협업으로 탄생한 기술이다. /삼성전자

문제는 앞으로도 상황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이재용 회장이 ‘시스템 반도체 1위’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2030년까지 171조원을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TSMC의 투자 규모를 따라잡진 못한다. 반도체 업계에선 올해부터 3년 동안 삼성전자가 매년 파운드리에 19조원 안팎을 쓸 것으로 예측한다. 같은 기간 TSMC는 연간 49조원(400억달러)을 파운드리에 쏟아부을 전망이다.

게다가 ‘종합 전자기업’이란 특성이 파운드리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도 있다. 고객사가 자사(自社) 핵심 비밀인 ‘반도체 설계도’를 삼성에 맡겨야 하는데, 그 비밀이 스마트폰이나 TV 등 완성품 경쟁사인 삼성 내부에 샐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경쟁사인 애플은 2010년까지 삼성전자에 아이폰 두뇌 반도체(AP) 생산을 전량 맡겨왔다. 하지만 이듬해 삼성과 스마트폰 특허 소송이 불거지자, 애플은 위탁 생산 물량을 TSMC로 모두 옮겨버렸다. ‘고객과 절대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를 택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가 현재의 압도적 1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라고 했다.

◇'파운드리 분사’ 목소리도 꾸준

이 때문에 삼성 안팎에선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分社)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완전히 독립해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 ‘전문 파운드리 기업’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파운드리사업부를 미국 증시에 상장해, 확보된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특허 분쟁을 벌인 이후 해외 투자자와 고객사들 사이에서도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며 “그래서 기존 사업부를 완제품과 부품 사업 부문으로 나눴지만 여전히 고객들 사이에선 의구심이 있고, 삼성 파운드리가 완제품 쪽과 칼같이 선을 긋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분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파운드리에서 번 돈만으로는 지금 규모의 투자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삼성 반도체 총괄 경계현 대표는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도 관련 질문에 “말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