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는 ‘대만 반도체 제조 기업(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약자다. 이름에서 보듯 TSMC는 1987년 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진흥 프로젝트’ 일환으로 설립된 공기업이었다. 정부가 핵심 산업군을 정해 자본을 대고 초대 사장까지 직접 영입해서 만든, ‘대만의 포스코’인 셈이다.
TSMC가 지금과 같은 글로벌 공룡이 된 배경엔 파운드리라는 사업 모델을 고안한 창업자 모리스 창의 혜안도 있었지만, 일찍이 반도체 산업을 점찍어 육성한 대만 정부의 노력이 컸다. 실제로 모리스 창은 “쑨윈쉬안(孫運璿)과 리궈딩(李國鼎)이 없었으면 TSMC도 없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쑨윈쉬안은 대만 행정원장(국무총리), 리궈딩은 정무위원(장관급)을 지낸 정부 핵심 요인이다. TSMC는 1992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대만 정부(대만행정원 국가발전기금)가 6.4%의 지분을 갖고 있다.
TSMC의 태동은 1969년부터 시작됐다. 쑨윈쉬안 당시 대만 경제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방문한 후 충격을 받고 이를 본떠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을 설립했는데, 이곳의 3대 원장으로 영입한 인물이 바로 모리스 창이었다.
모리스 창은 대만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공업기술연구원장으로 출근한 지 2주 만에 리궈딩 정무위원이 찾아와 ‘정부가 출자하는 방식으로 대형 IC(집적회로) 회사를 만들려 하는데, 당신이 전문가니 사업 모델을 짜보라’고 난데없는 미션을 내렸다”며 “1~2주 정도 고민하고 보고할 생각이었는데, 단 3~4일 만에 아이디어를 내라고 독촉하더라”고 했다. 그가 파운드리라는 생소한 사업 모델을 보고했더니, 단 이틀 만에 허가가 날 정도로 대만 정부는 반도체 회사 설립에 목이 말라 있었다.
대만 정부는 당시 IT(정보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던 대만 상황을 고려해 해외 기업으로부터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이전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민간 투자 지분 51% 중 20~30%는 외국계 기업으로 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내려왔다. 이때 필립스가 합류했다. 정부가 종합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고, 신일본제철의 기술 도움을 받으면서 박태준 포스코 설립자를 앉혀 철강 산업을 일군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 덕분에 1980년대 의류, 기계 부품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에 의존했던 대만이 오늘날 ‘반도체 제국’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