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고객 판매 물량을 300억원 규모로 준비했는데 온라인에 올릴 새도 없이 영업점에서 완판됐어요.”
KB증권은 30일 개인 판매를 시작한 신한금융지주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없어서 못 판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종자본증권은 회사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되는 것으로 선순위채·후순위채보다 변제 순위가 더 뒤인 ‘후후순위’여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발행된다. 금융기관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해당 금융기관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원금이 상각될 수 있는데도 높은 금리를 쫓는 개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등 5대 증권사의 개인 대상 채권 판매액은 5조1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금리 인상 상황에서 이자 수익을 목적으로 한 단기채가 인기를 끌었다면, 올해는 장기 채권을 사 둘 때라고 추천한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글로벌 금리 인상 마무리 등으로 향후 채권 금리는 하락 사이클을 탈 것”이라며 “중장기 채권 투자 전략에서는 채권 금리 상승 시 장기 국채 매수가 유효해 보이며, 단기적 채권 전략에서는 장기 국채 금리 급락에 따른 금리 매력 저하로 AA급 우량 회사채 투자를 추천한다”고 했다.
◇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 인기
이날 판매된 신한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은 수요 예측 단계에서부터 화제였다. 작년 하반기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면서 우리금융지주가 지난해 10월 말 5.97% 금리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이후 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신한금융의 신종자본증권 수요 예측에는 8580억원이 모집돼 당초 2700억원을 모집하려던 계획에 비해 3배 넘는 수요가 몰렸다. 최종 발행 금리는 5.14%로 ‘마지막 남은 5%대 금융지주 채권’으로 입소문을 탔다.
업계에서는 올해 중 금리 5%가 넘는 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이 다시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 27일 수요 예측을 실시한 KB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5년 콜옵션물의 발행 금리가 연 4.9%로 책정됐다. 여기에도 수요 예측 신고 금액인 4050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944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3%대로 떨어지면서 높은 금리를 찾는 투자자들이 많아져 작년 말과 달리 발행사 우위 시장이 된 것이다.
박주한 삼성증권 채권상품팀장은 “5%대 금리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1월에 국고채 금리가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단기채에 관심을 갖던 투자자들도 만기 보유 관점으로 접근하는 수요가 급증했다”고 했다.
◇채권 개미 늘어난다
개인들은 지난해부터 채권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개인들의 채권 거래량은 전년 대비 12조9000억원 증가한 25조9000억원으로 98.8% 급등했다. 전체 채권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규모도 2021년 0.2%에서 지난해에는 0.6%로 3배 뛰었다. 같은 기간 증권사, 은행 등 기관들의 채권 거래량은 오히려 888조4000억원 감소했다. 사들이는 채권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지난해 개인들은 위험 등급이 높은 신종자본증권을 포함한 회사채나 자산유동화증권(ABS)도 9조원어치 가까이 순매수했다. 이는 전년 대비 5조9000억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도 호재
지난해 국회가 금웅투자소득세 도입을 2년 유예한 것도 채권 투자의 매력을 높인다. 앞으로 2년간은 채권 양도소득에 대해 기존 제도대로 계속 비과세(이자소득은 과세)가 적용된다. 표면금리가 낮은 채권을 높은 금리에 매입한 후 금리 하락기에 매각했을 때 금리 차이에 따른 매매차익이 발생해도 과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채권에 투자할 경우 채권 이자와 함께 매매차익에 따른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연초부터 주식시장이 활황을 띠는 등 위험 자산에서 채권과 예금 등 안전 자산으로 돈이 쏠리는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끝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투자 성향을 고려해 채권 투자 여부를 결정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장의성 미래에셋증권 반포지점장은 “금리 상승기가 마무리되며 언제든지 투자 기회가 생길 수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여유 자금이 부족하고 주식이냐 채권이냐 고민하는 일반 투자자의 경우 채권 투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