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금융권에서는 “소유가 분산되어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스튜어드십(stewardship)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지난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나온 이 발언은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고,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소유 분산 기업은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경영 금지) 규제를 받는 금융사들이나 포스코·KT처럼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처럼 주식이 소액주주들에게 분산돼 확실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이다.

스튜어드십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이다.

4대 금융지주나 포스코, KT, KT&G 등 소유 분산 기업의 최대 주주 혹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 기금을 지렛대로 삼아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 등에서 투명성을 높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확실한 대주주가 있는 주인 있는 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작동은 “연금 사회주의화시키는 부분”이라고 표현하며 선을 그었다. 연금 사회주의는 국민들의 돈을 모은 연금으로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해 사회주의식 행태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우려 때문에 문재인 정부 당시 스튜어드십을 거론한 것이 시장을 휘저을 우려가 있다는 반발에 부딪혔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벌 옥죄려던 문재인 정부와 달라야”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스튜어드십은 주로 소유 분산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 지난 정부와는 차이가 있다. 지난 2018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을 도입했다. 다만 지난 정부는 스튜어드십을 통해서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도 목표로 했다. 당시 이러한 시도에 대해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노후 자금으로 기업을 길들이려는 ‘연금 사회주의’”라며 비판했었다. 현재 구조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국민연금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국민연금공단은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시민단체와 노동계 위원들을 중심으로 사모펀드 사태를 막지 못한 4대 금융지주와 산업재해가 발생한 포스코의 이사회에 국민연금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다. 실제로 사외이사 파견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스튜어드십을 통해 본격적으로 경영 개입에 나선다면 개입의 수준 역시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영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행사를 시작하면 특정 임원 선임안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부터 임원 해임·직무 정지를 청구하는 주주 제안까지 다양한 방법을 쓰게 될 것”이라고 “한번 개입이 시작되면 ‘필요한 만큼만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지켜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

김홍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늘리자는 것이 최근 자본시장의 추세이긴 하지만 한편에선 너무 과할 경우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철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 없는 기업’의 CEO들이 장기 집권하는 관행을 허물기 위해 스튜어드십이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CEO 교체가 정부 입맛대로 된다면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관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강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는 국민연금 외에도 해외 금융사, 개인 소액주주 등 다양한 주주가 있고, 엄격히 말하면 이들이 모두 기업의 주인”이라며 “불필요한 경영 개입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면 금융사의 진짜 주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했다.

☞소유 분산 기업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경영 금지) 규제를 받는 금융사들이나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처럼 주식이 소액주주들에게 분산돼 확실한 지배 주주가 없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견제할 세력이 없기 때문에 ‘셀프 연임’ 논란이 자주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