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金)과 실물 경기를 반영하는 구리 가격이 작년 말부터 동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원자재 값보다 이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뛰어 눈길을 끈다. 글로벌 광산 업체 주가가 금값이나 구리 값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것이다.

◇금값 16% 오르자 채굴 기업주 평균 36% 급등

지난해 강달러 국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금값은 최근 3개월 사이 큰 폭으로 뛰었다. 30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2월물은 1트로이온스당 1922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31일과 비교하면 16% 급등한 것이다.

같은 기간 금을 채굴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더 크게 뛰었다. 세계 최대 금광 기업인 미국 뉴몬트 마이닝의 주가는 25.9% 상승했고 세계 2위 금광 기업인 캐나다의 배릭골드도 23.9% 올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기업인 앵글로골드 아샨티의 주가는 61.0% 급등했다. 이들 기업의 주가 상승률을 평균해 보면 36%에 달한다.

상장지수펀드(ETF) 성과에서도 차이가 벌어진다. 미국 ETF 정보 제공 업체 ETF닷컴에 따르면 금 현물에 투자하는 ETF 중 순자산이 500억달러(약 61조5000억원) 규모로 가장 큰 ‘SPDR 골드 트러스트 ETF’는 최근 3개월 수익률이 12.54%를 기록했지만 뉴몬트 마이닝 등 채굴 업체를 담은 ‘반애크 골드 마이너스 ETF’는 같은 기간 34.87% 올라 상승률이 2배 이상이었다.

이런 현상은 경제학자보다도 실물경제를 잘 예측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로 불리는 구리도 마찬가지다. 건축과 설비, 송전 등에 두루 쓰이는 구리는 대표적인 경기 선행지표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될 때 오르는 경향이 있다. 통상 안전 자산인 금과는 반대로 움직이는데 최근에는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금과 구리가 동시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구리는 중국에서 다량 생산·활용되고 있어 중국의 본격적인 경기 재개를 앞두고 최근 3개월 새 23.6% 급등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구리 등 금속 채굴 기업인 미국의 프리포트 맥모란의 주가는 41.4%, 서던코퍼의 주가는 37.8% 올랐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채굴 기업의 경우 광산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천문학적일 정도로 고정비용이 많이 들고 변동비 비율은 낮다”며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경우 매출 증가액 대부분이 이익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주가가 빨리 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값 상승기에 채굴 기업에 투자하거나 채굴 기업 주식을 담은 레버리지 ETF에 투자할 경우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며 “반대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때는 채굴 기업 주가가 더 빨리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랠리 이어질까

시장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임환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구리 등 주요 산업금속 가격의 상승세는 이어질 전망”이라며 “춘절 이후 중국발 수요 증대 기대가 이어지고, 유로존의 양호한 경기 환경도 산업금속 가격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금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 가격 랠리는 적정 가치를 초과했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다변화 측면에서 금 매입 매력이 커지고 있는 점은 적정 가격 수준 이상으로 가격이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중국 수요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경기 지표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제조업 경기가 확장 국면으로 진입하는 신호가 보이지만, 성급하게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또 중국의 소비 회복이 본격적인 개선에 들어가면 구리 가격이 더 뛸 수 있지만, 오는 3월 정도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