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사무관이 옷을 벗고 대형 회계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공기관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회계사 출신 경력 특채 사무관이다. 작년 9월에는 기재부 경제구조개혁국 사무관 2명이 잇따라 사표를 내고 가상화폐 거래소와 2차전지 업체로 떠났다.
최근 금융위원회에서도 핵심 부서인 금융정책과에 발령받은 신입 사무관이 로스쿨에 입학한다며 사표를 냈다. 금융위의 한 서기관은 “과거에는 선배들이 ‘1년도 채우지 않고 떠나는 것은 성급하다. 좀 더 해보지 그러느냐’고 말렸는데, 요새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금융정책과장 후보로 유력했고, 촉망받던 부이사관이 “돈을 벌어야겠다”며 금융회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의 이직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경제성장을 이끌던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의 후예들이 “공무원 생활 그만하겠다”고 떠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민간 주도로 돌아가면서 경제 관료들의 입지가 이전만 못해졌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적 지위 일반 직장인에 뒤진다”
요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나 급여가 민간 기업을 다니는 샐러리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일 한국행정연구원의 ‘행정에 관한 공무원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무원 1000명 설문조사에서 31.9%가 “민간 직장인의 사회적 지위가 공무원보다 높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공무원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응답은 31.4%였다. 36.7%는 비슷하다고 했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작년 7~8월 중앙 부처와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다.
1998년부터 3년 단위로 하는 설문조사 결과인데, 공무원 스스로 생각하기에 민간 직장인의 지위가 높다는 응답이 더 많았던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2019년만 해도 공무원의 지위가 높다는 응답(38%)이 민간이 높다는 응답(18.4%)을 20%포인트 가까이 앞섰는데, 작년 들어 처음으로 역전됐다. 2007년만 해도 공무원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응답(47.3%)은 민간이 높다는 응답(16.9%)의 2.8배에 달했었다.
◇“노후 보장도 불안”
정년 보장과 함께 공무원들을 인기 직업으로 만든 요인인 노후 생활 보장 면에서도 공무원 41.7%만 “민간 직장인보다 공무원이 더 유리하다”고 응답했다. 공무원의 노후 생활 보장이 더 낫다는 응답은 2013년에는 69.3%나 됐는데 점차 줄어들더니 작년에는 처음으로 절반을 밑돌았다.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공직자의 로펌 등 재취업 제한이 강화된 데다, 공무원 연금 본인 부담 비율을 늘리고 지급액을 깎는 연금 개혁이 2010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단행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경제 부처 한 서기관은 “급여 수준이 낮더라도 보람, 명예, 적극적 업무 성취 가능성 등 면에서 공직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대통령실, 국회, 시민단체, 감사원 등에 치이면서 이런 생각이 점차 희미해졌다”며 “입사 초기만 해도 국회 4급 보좌관이 3급이나 4급 과장이랑 업무 협의를 했는데, 요즘은 5급 비서관이 2급인 국장 부르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또 다른 경제 부처의 10년 차 사무관은 “입사 초만 해도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했는데 요즘은 돈도 없고 가오도 없다”고 했다. 가오는 폼을 잡는 것을 뜻하는 속어다.
한 경제 부처 국장은 “정치권에 치이면서 정책 결정을 주도한다는 자부심이 점차 흐려졌는데, 작년 5월 이후 여소야대 상황이 극심해지면서 공무원들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