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이 1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연합뉴스

지난해 일제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이 1조4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35% 급증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순이익 증가율(20%)보다 성과급 증가율이 훨씬 높다. 은행권의 과도한 ‘성과급 잔치’를 비판하는 여론이 근거 없는 지적이 아닌 것이다.

◇4대 은행 모두 성과급 잔치

14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작년 성과급 총액은 1조3823억원으로 전년 대비 3629억원(35%) 늘었다. 성과급 총액은 농협은행이 670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국민은행(2044억원), 신한은행(1878억원), 하나은행(1639억원), 우리은행(1556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임원 1인당 성과급으로 최고 15억78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하나·우리은행 임원들은 최고 3억원대 성과급을 받았고, 농협은행 임원의 최고 성과급은 1억9900만원이었다.

은행 일반 직원들도 1인당 평균 1000만~3000만원대 성과급을 받았다. 우리은행에서는 1억720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은 직원도 있었다. 은행들은 연간 경영 실적을 기초로 성과급을 산정한 뒤 최종적으로는 노조와의 임금협상을 거쳐 확정한다. 한 은행 임원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으니 사측(은행)의 협상력이 약해져 노조가 요구하는 대로 성과급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연일 은행권의 ‘잇속 챙기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 잔치’를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은행 성과급 체계에 제동을 걸겠다고 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국민 대다수가 대출 이자로 힘겨워하는 와중에 은행의 성과급 돈 잔치는 공공적 성격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했다.

◇이자 이익이 90%

정치권이 민간 회사인 은행의 인사와 임금체계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관치 금융’ 논란과는 별개로, 성과급 논란은 은행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모두 총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의 비율이 90%를 넘었다. 금리 상승기에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벌어 성과급과 희망 퇴직금으로 막대한 금액을 지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4대 은행은 이자 장사로 12조원이 넘는 역대급 순익을 달성했다. 최근 각 금융그룹이 발표한 작년 실적 자료에 따르면, 4대 은행이 거둔 영업이익의 90% 이상이 이자이익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총영업이익 9조6541억원 가운데 96.2%(9조2910억원)가 이자이익이었다. 증시 부진과 고금리 탓에 신탁·증권 중개 관련 수수료와 유가증권 평가이익 등 비(非)이자이익은 49%나 급감했지만, 늘어난 이자이익 덕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낼 수 있었다.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의 이자이익 의존도는 96.8%, 하나은행은 94.3%, 우리은행은 90.9%에 달했다.

이는 해외 은행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미국 시티은행의 경우 지난해 총영업이익(753억3800만달러)에서 이자이익(486억6800만달러)의 비율은 65%였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대체로 주요국 상업은행들은 이자이익과 비이자이익 비율이 6대4 정도”라며 “그에 비해 국내 은행들은 신사업이나 해외투자 등 비이자이익 확대에 소홀한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이 10여 년 전부터 ‘수익구조 다변화’를 외쳐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다. 이자이익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저금리·저성장 상황에서 수익성 유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